[영주 소백산하를 가다] <3>천상의 화원 소백산

입력 2016-07-11 22:30:02

굽이굽이 절경·천년고찰… 산길따라 쭉∼ 펼쳐지네

높이 28m의 희방폭포 물줄기가 장관이다.
높이 28m의 희방폭포 물줄기가 장관이다.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지는 소백산 산행은 흙으로 뒤덮인 육산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멋지게 느낄 수 있다.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잇는 소백산은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한 국립공원이다. 상월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복의 치맛자락처럼 부드러움과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

봄의 철쭉, 여름의 들꽃, 가을의 붉은 단풍, 겨울의 하얀 눈꽃으로 이어지는 소백산은 천상의 화원이다. 연화봉에는 우리나라 천문 관측의 중심이 되는 천문대가 위치하고 있고 오르는 등산로에는 천년고찰과 천혜의 자연자원이 어우러져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지로 손꼽히는 소백산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천상의 화원 소백산

소백산은 고산 철쭉 산행의 클래식으로 꼽을 정도로 이름난 산중화원이다. 웅장하고 부드러운 소백산릉에 분홍색 철쭉이 핀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최고 높이 1,439.5m에 이르는 고산에 핀 철쭉은 봄 산행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로봉 정상 인근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로봉 주목 군락은 수령 200~500년 된 고목 1천여 그루가 붉은 줄기를 자랑하며 빽빽이 들어차 있다.

소백산 철쭉은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 고산답게 늦봄이 되어서야 철쭉이 피는 셈이다. 철쭉은 주능선에 밀집해 있다. 특히 연화봉(1,383m)에서 정상인 비로봉으로 이어진 능선과 국망봉(1,420.8m) 주변에 철쭉이 많다.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세 봉우리는 절집도 이고 있다. 연화봉 아래에는 희방사, 비로봉 아래에는 비로사, 국망봉 아래에는 초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희방사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두운 조사가 소백산 남쪽 기슭 해발고도 850m에 창건한 사찰이다. 1568년(선조 1)에 새긴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으나 6'25전쟁 때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됐다. 1953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희방사 동종(경북유형문화재 226호)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월인석보는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으로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과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세존의 공덕을 찬송하여 노래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책이다. 불경언해서로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1권 머리에는 훈민정음판 15장, 30면이 얹혀 있어서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이용된다.

절 입구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연림이 우거져 있으며, 사찰 아래쪽 계곡에는 영남지방 최대 폭포인 높이 28m의 희방폭포가 있다.

◆초암사

국망봉 남쪽 계곡 아래에 자리한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세운 조계종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전을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다. 부석사를 지은 후 이곳에 다시 절을 세웠는데, 우람한 거석 축대, 주춧돌 등으로 미뤄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찰은 청량도량으로 6'25전쟁으로 파괴돼 다시 지은 법당이 남아 있다. 초암사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126호)과 초암사 동부도(경북유형문화재 128호), 초암사 서부도(경북유형문화재 129호) 등이 남아 있다.

높이 3.5m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한 것으로, 사각형 지대석 위에 세워진 이중기단의 각 면석에 우주가 있고, 일주식 탱주를 모각하였다. 각 층 옥신에도 우주가 있고, 옥개석 아래 4단의 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없지만, 주변에 그 파편이 흩어져 있다.

왜경이 약탈해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세계적인 명품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이곳의 것이며 흑석사에 있는 국보 제282호 '목조아미타불좌상'도 이곳에서 출토된 것이다.

◆비로사

소백산 비로봉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신문왕 때 승려 진정이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창건 설화에 따르면 의상이 제자인 진정의 홀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현 비로사 자리로 추정되는 소백산 추동에 초가를 짓고 화엄경을 강의했고 90일 동안 계속된 이 강의가 끝나자 진정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하늘에서 환생했다. 신라 시대에는 소백산사로 불렸다.

신라 말에 이 절을 중창하고 고승 진공이 머물렀는데, 고려 태조가 이곳에 와서 진공의 법문을 듣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태조 20년에 진공이 사망하자 태조가 직접 진공대사라는 시호와 보법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었다. 이때 최언위가 글을 지어 세운 진공대사 탑비가 남아 있어 영주시 지방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돼 있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중창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승병이 거점으로 활용하다가 전소되어 새로 지어야 했고, 1909년에도 법당 외의 건물이 모두 불타 남아 있는 건물은 모두 현대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996호인 아미타불상과 비로자나불상을 보유하고 있다. 9세기 신라 후기의 화엄불교 미술 특징을 보여주는 문화재다.

◆희방폭포

소백산 중턱 해발고도 700m 지점에 있는 폭포다. 소백산 절경 중 한 곳이며 영남지방 제1의 폭포로 꼽힌다. 높이는 28m다. 소백산의 영봉 중 하나인 연화봉에서 발원, 희방계곡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물줄기다. 요란한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직 암벽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장관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 즉 '하늘이 내려준꿈에서 노니는 듯한 풍경'이라 평했다.

연화봉에 오르는 등산 코스를 따라가면 만난다. 폭포 옆의 암벽에 설치된 철계단을 올라가면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과 폭포 위의 소(沼)를 볼 수 있다.

◆죽계구곡

죽계구곡은 퇴계 이황이 계곡의 풍취에 심취돼 아홉 굽이에 이름(백운동 취한대, 금성반석, 백자담, 이화동, 목욕담, 청련동, 용추비폭, 금당반석, 중봉합류)을 붙인 뒤 죽계구곡이라 명명했다. 수정처럼 맑고 차가운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에 땀을 식히기엔 안성맞춤이다.

소백산 깊은 계곡에서 발원한 죽계수는 기암괴석을 휘감아 죽계구곡을 흐른다. 솟구치는 물방울이 마치 수정 구슬을 흩어 놓은 듯 아홉 굽이 절경을 빚어낸 죽계구곡은 안축(安軸'1287~1348) 선생의 죽계별곡 무대가 된 곳이다.

조선 중기에는 주세붕, 퇴계 이황 선생이 경치를 즐기며 시를 읊었다 한다. 2㎞에 걸쳐 9곡 이화동부터 1곡 금당반석까지 자리 잡고 있는데 1, 2, 4, 5, 9곡의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 제1곡 금당반석은 아담한 폭포와 소 앞으로 너른 바위가 펼쳐져 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죽계수는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기세다. 죽계구곡에 여름이 오면 미끄러져 내려가는 죽계수와 바위, 느티나무 고목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2, 3곡을 지나 4곡에 이르면 소 한가운데 둥근바위가 놓여 있다. 소에 떨어지는 물길은 용이 하늘에서 여의주를 물고 내려오는 모습을 닮았다 해 용추비폭이라 불린다. 7곡은 돌에 낀 이끼까지 선명하게 보일 만큼 푸르고 푸르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준다. 바로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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