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문화 이끄는 힘은 '10대 소녀들'…『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입력 2016-07-08 18:32:49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강준만'강지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온라인 공식 팬카페 회원 수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아이돌그룹 팬클럽 규모 순위(올해 6월 기준)는 이렇다.

▷1위 동방신기=54만1천 명 ▷2위 방탄소년단=31만2천 명 ▷3위 비스트=26만2천 명 ▷4위 빅뱅=25만9천 명 ▷5위 소녀시대=24만3천 명 ▷6위 인피니트=20만 명 ▷7위 에이핑크=15만4천 명 ▷8위 B1A4=15만3천 명 ▷9위 블락비=14만2천 명 ▷10위 슈퍼주니어=13만1천 명.

보이그룹이 10위 안에 8팀이나 된다. 대한민국 걸그룹의 상징인 소녀시대라지만 팬클럽 규모로만 보면 전체 5위에 불과하다. 보통 남자 스타에게는 소녀들로 구성된 오빠부대가, 여자 스타에게는 소년들로 구성된 누나부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팬클럽 순위를 살펴보면, 국내 아이돌그룹의 팬덤은 일명 빠순이('오빠 순이', '오빠에 빠진 어린 여자이이'의 줄임말이다. 대중스타의 열성적인 여성 팬을 비하해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비하의 개념으로 쓰지 않았다.)들이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한 팬들이 반드시 이성인 스타만 좇는 것은 아니다. 걸그룹 팬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여기에 보이그룹 팬 대다수(90% 이상)가 여성인 사실까지 종합해 보면, 아이돌그룹 팬덤을 이끄는 것은 10대 소녀들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들, 빠순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빠순이들의 팬덤이 지난 20여 년간 우리 대중문화를 쉴 새 없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기반 위에서 아이돌 엔터테인먼트가 성장했다. 다시 그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한류 열풍도 불 수 있었다. 빠순이들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그토록 원하는 관객(콘서트 관람), 작품 구매자(음반 및 음원, 아이돌그룹 연계 상품 '굿즈' 구입), 후원자(팬클럽 활동) 역할을 꾸준히 맡아왔다. 어쩌면 이미 완성된 문화예술 소비자 롤모델일 수 있다.

하지만 빠순이에 대한 우리 사회, 특히 '꼰대'로 불리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꽤 부정적이다. 빠순이들의 행위를 전부 뭉뚱그려 '일탈'로 규정한다. 학교 수업에 빠지면서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공연장과 숙소를 쫓아다니는 열성 팬들만 보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그들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니 어른이랍시고 옆에서 뭐라 참견할 이유가 없고, 또한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그의 딸 지원 씨, 바꿔 말하면 빠순이 아빠와 빠순이 당사자(지원 씨는 '동방신기' 팬이라고 한다.)인 두 저자는 빠순이들을, 그리고 그들이 형성하는 팬덤을 좀 다르게 바라보자고 주장한다.

책은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소통, 연대, 결속, 우정 등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에 주목한다. 아이들이 속한 가정과 학교는 소통을 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한 지 오래다. 두 곳은 더 나은 성적을 위해 독려하고 감시하고 추궁하는 공동체다. 좀처럼 소통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말이 통하는 세계를 찾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고, 그래서 형성된 것이 아이돌그룹을 매개로 하는 팬클럽이다. 책 제목의 답이 여기에 있다.

이 같은 팬덤 공동체들은 마냥 즐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은 세상도 배운다. 좋은 예가 하나 있다. 팬클럽 연합은 아이돌그룹의 불공정 계약 관행을 지속적으로 지적하며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 전속 계약서를 내놓게 만들었다.

사실 팬덤은 한국의 빠순이들만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서양에서도 록 밴드의 콘서트가 열리면 관객들이 우리나라 빠순이들보다 더 우렁차게 '떼창'을 한다. 영국의 악성 축구 팬덤 '훌리건'도 유명한 사례다. 대중문화와 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나 살펴보면, 국내에도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정치인을 마치 신이나 교주처럼 추종하는 팬덤이 여럿 형성돼 있다. 그중 일부 병폐는 10대 소녀들의 소박한 일탈(?) 수준을 거뜬히 뛰어넘고 있다. 26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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