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텃밭에서-잡초는 없다

입력 2016-07-08 18:39:45

성당 옆에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공터가 있습니다. 그 땅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합니다. '교육관을 지으면 좋겠다.' '유치원을 지어도 괜찮겠다.' '성당 바로 앞의 땅과 바꾸어서 사용하면 더 좋겠다.' 그런데 그 땅을 보는 순간 저는 농사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성장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가 봅니다. 시골서 자란 탓인지 아니면 덕분인지 저는 빈 땅을 보면 무언가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올봄에 그 주차장 한쪽 구석에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쪽에는 열매채소를 심고, 햇살이 늦게 들어오거나 그늘이 일찍 드리우는 쪽에는 잎채소를 심었습니다. 씨앗으로도 뿌리고 모종으로도 심었습니다. 울타리 옆에는 덩굴콩과 호박을 심고, 해 질 녘이면 다소곳하게 피어나는 하얀 꽃이 보고 싶어서 박도 두어 포기 심었습니다. 열심히 들락거리고 정성을 들인 덕분인지 지금은 제법 어울리는 텃밭이 되었습니다. 이웃과 수확물을 조금씩 나누어 먹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물론 키우던 채소 중 일부는 진딧물 먹이로 내어 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채소를 키우면서 진딧물도 편식이 심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진딧물이 유난히 좋아하는 채소가 있고, 그 근처엔 얼씬도 안 하는 채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한 줄씩 섞어서 심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텃밭을 가꾸면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씨앗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올라오는 것인지 아무리 뽑아도 사나흘만 지나면 새로운 싹들이 올라옵니다. 그중에 바랭이란 녀석은 씨앗을 한꺼번에 발아시키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싹을 틔웁니다. 거기에다가 줄기의 한두 마디만 남겨도 거기서 뿌리를 내려서 한 포기를 만들어 내니 그 생명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잡초들도 왕성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텃밭 안쪽은 그동안 부지런히 호미질을 한 덕분에 깨끗해졌는데, 바깥쪽은 온통 풀밭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씨앗 퍼뜨리는 것만 막자는 생각에 우선 꽃대가 올라온 것들과 키가 큰 풀들만 뽑기 시작했습니다. 비 온 뒤라 땅이 물러져서 뽑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사방이 온통 주택가인데도 어디서 그 많은 씨앗들이 날아왔는지 신기합니다. 종류들도 다양합니다. 바랭이, 개망초, 명아주, 까마중, 달개비, 민들레, 쑥, 참비름, 냉이, 강아지풀, 도깨비바늘, 박주가리 등 대충 아는 이름만 해도 열 손가락을 넘어섭니다. 마사토에 딸려 왔는지 갈대와 억새와 야관문, 그리고 달맞이꽃도 보입니다.

두어 시간 동안 풀 뽑기 작업을 하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어머니께서 생전에 밥상에 올려 주시던 귀한 반찬재료들인 쑥과 냉이와 참비름, 낭만적인 시와 노래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소가 좋아했던 갈대와 억새, 알프스의 봄 초원을 노랗게 물들였던 민들레, 그러고 보니 달맞이꽃도 시골의 밤 정취를 돋우어주던 노란색 꽃입니다. 개망초도 이름은 좀 천박스럽게 보이지만 군락을 이루면 메밀꽃이나 안개꽃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라틴어 문구 하나가 떠오릅니다. 존재는 선하다(Ens est bonum).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풀들이 잡초로 분류되어 뽑히는 신세입니다.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자리를 잘못 잡은 탓으로 제거 대상입니다. 잡초들의 항변을 들어봅니다. "우리는 흙이 나를 데리고 가는 대로, 바람이 싣고 가는 대로 따라 와서 뿌리를 내렸을 뿐인데."

어쩌면 우리 서민들의 사는 모습 같아서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들이 힘을 가진 자의 이기적인 판단으로 인해 주변인으로 소외당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잡초로 분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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