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어렸을 때, 돈은 없고 돈이 필요할 때 동전을 은박지로 본을 떴어요. 써먹을 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본을 떴지요. 언어는 은박지처럼 잘 구겨져요. 공(功)을 좀 들이면 원하는 대로 사물의 본을 뜰 수는 있어요. 제 시의 언어는 그런 은박지 정도의 수준도 못 되어요. 본을 뜰 때, 약간 섬세하게 사물을 다루는 수준, 딱 그 정도에 제 시가 살았으면 좋겠어요. 본뜨기도 제대로 못한다면, 저는 제 시를 은박지처럼 단번에 구겨서 쓰레기통에 처박아야만 해요.
선(善)
밑천이 짧은 제가 노자를 읽으며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어요. 선함의 반대에는 나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하지 못함'이 있을 뿐이고, 좋은 것의 반대편에는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지 못함'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에요. 착하지 못한 것은 착해질 수 있고, 좋지 못한 것은 언제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삶은 허공과 같이 열려 있어요. 빈 종이컵을 손바닥으로 막았다가 다시 열어주면 그 공기는 허공의 공기와 한 몸이 되지요. 분별없는 허공이에요.
가벼움
가벼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어요. 가벼움은 무거움의 지독한 성질이 아닐까요. 가벼움은 무거움이 목숨을 걸고 다다른 피안의 언덕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가벼움은 무거움의 또 다른 별명이지요. 세상의 일들이 육중할수록 우리는 가볍게 살기로 해요. 별들은 측량할 수 없이 무겁지만 반짝이며 떠있어요. 세상을 마감하는 날까지 별이 왜 반짝이는지 저는 알지 못하겠지만, 존재의 가벼움은 영원에 못 박힌 무거움의 한 기법일지도 몰라요. 가벼워야 반짝여요.
사랑
사랑이 화폐에 포섭되고 있어요. 큰 회사의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고객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지요. 제가 왜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사랑이 부담스러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어요. 사랑이 화폐의 품 안에 안기면서 인간의 얼굴은 지워지고 사랑은 기계가 되었어요. 사랑은 사물과 사물,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전도체예요. 그러나 요즘은 가끔 합선과 스파크를 일으키며 동네를 암흑천지로 만들기도 한다더군요. 불량전도체, 사랑 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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