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으로 되살아난 삼국유사] <상>다시 꽃핀 경북의 자존감

입력 2016-06-23 22:30:02

경북신청사에 '8만9,354字' 전시…목판 기록문화 가치 높였다

경상북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상북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삼국유사 목판 복원 사업'에서 삼국유사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모습. 경북도 제공
삼국유사 목판 복원 사업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는
삼국유사 목판 복원 사업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는 '삼국유사 목판사업 도감소. 지난해 개소식에서 김관용 도지사, 김영만 군위군수 등이 전국에서 선발한 각수의 실제 목판 복원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경북도 제공
삼국유사 목판 목각에 사용되는 각종 도구들. 경북도 제공
삼국유사 목판 목각에 사용되는 각종 도구들. 경북도 제공

일연 선사가 군위 인각사에서 저술한 삼국유사(국보 제306호)는 삼국뿐 아니라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 가야 등 고대 국가 역사를 망라하고, 단군 등 시조신화, 불교, 민속신앙, 서민생활상, 고대 문학에 대한 자료를 두루 담고 있다. 한민족사의 자주성과 문화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이에 경상북도는 지난 2015년부터 '삼국유사 목판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족의 보물로 인정받고 있는 삼국유사가 원 목판 없이 인쇄본만으로 남아 그 원형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목판 복각(復刻)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처음 추진하는 사업이다.

경북도와 군위군 주최로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하고 있으며, 2017년까지 현존하는 삼국유사 판본 중 3종을 목판으로 복각하고, 전통 방식의 책을 제작해 보급한다.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삼국유사 목판 복원 사업의 의미와 성과, 과제 등에 대해 살펴본다.

◆왜 삼국유사 목판 복원인가

'목판'은 인쇄문화의 원형이다. 선조들이 한 자 한 자 손으로 새겨 후손에게 전해 주려 했던 고귀한 정신문화의 산물로 인쇄술을 넘어 최고의 예술품이기도 하다.

삼국유사 경우, 1512년 경주 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임신본을 마지막으로 목판으로서는 자취를 감췄다. 목판으로 인출한 10여 종의 판본만이 책 형태로 남아있다. 이에 경북도는 자랑스러운 우리 목판 기록 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삼국유사의 역사적'문화적 의의를 다시 밝히고자 '삼국유사 목판 복원'을 기획했다.

또 '경상도 개도 700년'을 맞아 역사적인 경북도청 신도시 이전을 기념하고, '새로운 천 년의 신도청 경북시대'와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어나가는 데 필요한 경북의 자존감을 되살리는 의미를 담았다.

경북도는 현존하는 삼국유사 판본을 모델로 2017년까지 조선 중기본과 초기본, 이를 집대성한 경상북도본을 각각 1세트씩 판각해 전통 방식으로 인출한다.

인출한 책자는 대학, 도서관, 연구기관 등에 보급해 삼국유사의 이해와 고대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제공하며, 판각한 3개의 목판 세트는 각각 신도청과 군위군,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해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앞서 경북도는 2014년 삼국유사 목판 복원 사업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국비를 확보하고, 학술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마련했다. 지난해 2월에는 국내 최고 전문가를 추진위원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또 판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시로 자문위원회를 열어 고증작업을 거쳤으며, 서울대 규장각본(국보 제306-2호)의 실측을 토대로 목판 원형을 설계했다. 또 지난해 6월 전국 공개모집을 통해 '각수'(刻手) 7명을 선발했고, 이어 11월엔 군위군 군위읍 사라온마을에 '삼국유사 목판사업 도감소'가 문을 열었다.

◆첫 복원 성공

경북도는 올해 3월 삼국유사 목판의 첫 복원에 성공했다. 조선 중기 판본 '중종 임신본'(규장각본) 판각을 완료한 것이다. 판각은 ▷판목 만들기 ▷등재본 만들기 ▷글자 새기기 ▷교정하기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

판목은 알맞은 조건의 강도와 탄력을 갖추고, 쉽게 변하지 않는 판자 형태를 갖춰야 한다. 이후 판각하고자 하는 크기에 맞춰 등재본을 만들고, 뒤집어 판목에 완전히 밀착시킨다. 이어 망치로 칼을 두드리거나 칼날을 밀면서 글자를 새긴다. 마지막으로 글자의 길이나 굵기, 잘못된 글자 등을 바로잡는 작업을 한다.

경북도가 이번 복원에 사용한 판재는 3년 이상 자연건조(천연건조)한 산벚나무 또는 돌배나무다. 한국임업진흥원 시험평가팀에 의뢰해 적합 판정을 받은 판재만 사용했다. 또 조선 중기의 목판 형태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제작했으며, 등재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중종 임신본을 기준으로 제작했다.

목재의 선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목판 양식의 통일이다. 이를 위해 제작을 총괄하는 목판사업팀에서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자문위 심의를 거쳐 표준 규격을 제시했다. 또 여러 명의 각수가 유사한 기법으로 원본과 가장 가깝게 글자를 새기는 데 중점을 뒀다. 각자 통일된 사본(寫本)을 가지고 제작하지만 각수마다 조각의 각도나 깊이, 획의 처리가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도감소는 워크숍을 개최해 각자 서체의 통일을 강조하고 시범 제작, 훈련까지 마쳤다. 모든 각수는 판각의 모든 과정에 대해 작업일지를 작성했다. 작업일지를 통해 후대에까지 전통 판각 기술을 보존, 계승하기 위해서다.

판각이 끝난 후에는 책으로 꾸미는 작업에 착수해 지난달 완료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20질을 제책하고,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배포했다. 제책을 위한 한지, 먹 등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한 제품을 사용했다. 5권 2책의 삼국유사를 인출하는 데 한지 3천160장이 쓰였다.

경북도는 지난 3월 10일 안동'예천 신도청 개청식과 함께 본관 1층에 삼국유사 중기본을 전시하고 있다. 판각이 끝난 삼국유사 목판과 책으로 인출한 삼국유사, 판각 관련 유물, 각종 사진 자료 등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그러모으고 있다.

경북도는 다음 달 8일 중기본 완료 보고회를 연 뒤 두 번째 과제로 조선 초기본 판각에 나선다. 현재 연말 완료를 목표로 '파른본' '범어사본' 등의 판본들을 확보'조사하고 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삼국유사 목판사업은 단순히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 목판 기술의 중요성과 삼국유사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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