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도 한때는 부랑자들의 끼니

입력 2016-06-17 18:14:41

맛의 천재

나폴리 소년들이 선 채로 마케로니를 빠르게 먹어치우는 모습(사진 위)은 나폴리의 유명한 볼거리가 됐다. 아래 사진은 포도즙을 짜는 모습을 그린 삽화.
나폴리 소년들이 선 채로 마케로니를 빠르게 먹어치우는 모습(사진 위)은 나폴리의 유명한 볼거리가 됐다. 아래 사진은 포도즙을 짜는 모습을 그린 삽화.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미술가이자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꽤 있다. 그러나 다빈치와 동업한 요리사가 산드로 보티첼리(화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젊은 시절 미술 공방의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부업으로 '세 마리 달팽이'라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에서 독살사건이 발생해 주방의 모든 요리사들이 사망했다. 엉겁결에 보조에서 주방장이 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파격적인 음식을 내놓았다.

그릇에 음식을 가득 담아 먹던 당시 관습을 깨고 접시 위에 빵 한 조각과 바질 잎 한 장을 얹어 내놓았던 것이다. 배고픈 손님들이 다빈치 요리를 좋아했을리 없다. 해고된 다빈치는 친구 보티첼리를 꼬드겨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두꺼비'라는 식당을 열었다. 보티첼리가 메뉴판 디자인도 하고, 간판 그림도 그렸지만 장사는 신통치 않았고, 식당은 오래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음식점 테이블에 앉아서 피자를 먹는 풍경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았다. 피자는 거리의 음식이었고, 선 채로 접어서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음식, 바쁜 사람들을 위한 요깃거리, 부랑자들의 음식이었고, 연기와 불꽃을 뿜어내는 화덕에서 꺼내자마자 뜨거운 상태에서 네 겹으로 접어 먹는 음식, 거리의 모퉁이에 서서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먹는 음식이었다.

피자집 내부는 흔히 '지저분한 곳'의 대명사였고, 청년들이 당구장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한 뒤 '시끄럽게 떠들면서' 들어와 그나마 남은 돈으로 사 먹는 음식이 피자였다.

피자를 만드는 사람, 즉 '피자이올로(pizzaiolo)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상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 가게의 대리석으로 만든 작업대 위해서 피자를 준비해 화덕에 넣어 구워낸다. 하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 가게 없이 돌아다니며 피자를 파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이 책 '맛의 천재'는 이탈리아 맛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쓴 수많은 책과 자료를 꼼꼼하게 뒤지고,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맛의 천재'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탈리아 음식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탈리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식문화가 정치, 종교의 역학 관계에 얽혀서 발전하거나 쇠퇴하는 이야기, 식품 기업들의 상품 작명 일화와 마케팅 기술,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음식 레시피의 변천사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로마 군대는 약탈로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수송했다. 그들은 물자 수송을 위해 진출한 지역까지 도로를 닦았다. 또한 신선한 상추를 병사들에게 충분히 보급하기 위해 야영지 주변에 드넓은 상추밭을 가꾸었다.

와인을 무거운 항아리에 담아 어렵게 옮기는 대신 야영장 근처에 포도나무를 심는 방식을 택했다. 276년부터 282년까지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병사들에게 포도주를 공급하기 위해 항상 포도 묘목을 가지고 다니라고 지시했다. 현재 헝가리, 프랑스, 스페인, 크로아티아에서 자라는 78개 포도 품종이 고대 로마의 직계 후손이다. 또한 오늘날 중요한 포도주 생산지들 가운데 몇 곳은 로마군의 야영지였던 곳이다.

지은이 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는 베네치아 출생으로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구유고슬라비아 사태를 보도하기도 했다. '돈의 발명: 유럽의 금고 이탈리아, 금융의 역사를 쓰다' '베네치아의 운송수단: 곤돌라의 역사' '책 공장 베네치아: 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 등을 썼다. 575쪽, 2만3천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