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원래 물의 도시였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곳곳에 크고 작은 못이 많았다. 천황당못(서문시장), 영선못(영선시장), 한골못(MBC네거리), 범어못(대구여고), 송라못(신천동 송라아파트 일대), 날뫼못(비산동) 등 웬만한 골에는 으레 연못이 있었다.
이들 저수지는 일제강점기 이후 시가지가 팽창하면서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논밭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저수지도 점차 용도 폐기된 것이다. 수십 년 전까지도 남아 있던 감삼못(감삼동)은 1984년에, 배자못(경북대 북편)은 1994년에 메워져 택지로 변했다.
'분지'답게 골짜기마다 생긴 물길도 실핏줄처럼 달구벌을 굽이쳤다. 그러나 이들 소하천도 저수지와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대명천은 대명동 앞산에서 발원, 중구와 서구, 남구, 달서구를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하지만 어디가 물길인지 알 수 없다. 총 길이 13.5㎞ 가운데 하류 4.6㎞를 제외하고 모두 콘크리트로 덮여 도로가 됐다. 달서천, 범어천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곳으로 흘러드는 수많은 지천(支川)도 지상에서 사라졌다. 신천을 제외하고는 모두 복개천(覆蓋川) 신세가 됐다. 산업화'도시화의 희생양이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후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천대받던 저수지와 하천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범어천은 27년 만에 복개도로를 뜯고 생태 하천으로 거듭났다. 용케도 살아남은 수성못과 성당못은 대구의 오아시스처럼 관광지로 변신 중이다. 또 새로 조성하는 공원에는 인공 연못과 분수대가 약방에 감초처럼 들어선다. 아파트 단지에도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몇 해 전 개발된 대구혁신도시에는 수백 년 내려오던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지만, 저수지 8곳은 모두 살아남아 친수공간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연못과 하천은 대구의 폭염을 물리치는 일등공신이다. 생태'친수공간으로 되살아난 신천(新川)이 그 중심에 있다. 수질이 개선되고 생태 환경이 되살아나니 시민들이 찾아와 사색하고, 운동하고, 여가를 즐기는 신천 강변 문화도 생겨났다.
이제는 신천을 넘어 큰 그림을 그릴 때가 됐다. 포스트 신천은 '금호강'이다. 한때 썩은 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금호강은 현재 수질이 2급수로 개선되고 멸종위기 1급인 수달도 서식하는 등 생태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검단들과 금호강 수변을 연계해 주거'산업'문화'레저가 어우러진 금호워터폴리스(대구시), 화담 휴 프로젝트(북구청), 동촌'금호강 명소화(동구청) 사업 등 금호강 프로젝트가 줄을 서 있다. 이들 사업은 내년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금호강은 2020년쯤 대구의 새 명소가 될 것이다. 정종섭, 유승민, 정태옥, 추경호 의원 등 정치인도 지난 총선 때 잇따라 금호강을 살리겠다고 약속했으니 기대가 크다.
대구권 금호강이 개발되면 동구, 서구, 북구 등 상대적 소외지역인 대구의 북축이 살아나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개발 방향이다. 개발 포인트는 '부동산'이 아니라 '자연'이다. 금호강은 회담지구와 동촌유원지 등 경관만 좋은 게 아니다. 안심습지, 팔현습지, 하중도, 달성습지 등 자연 생태의 보고가 줄지어 있다. 영남 제1의 정자였던 '압로정', '왕건의 흔적' 등 곳곳에 유적과 역사 스토리도 많다. 조선 초기 서거정도 대구의 제1경으로 '금호강 뱃놀이(금호범주'琴湖泛舟)를 노래하지 않았던가.
'물' '수변' '스토리'는 금호강의 핵심 콘텐츠다. 이러한 자원을 잘 다듬어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전국 관광객을 불러들여 쉬고, 체험하고, 즐기는 친수벨트로 개발한다면 금호강은 서울의 한강, 부산의 해운대와 같은 대구의 새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대프리카'라는 어두운 이미지도 보기 좋게 반전시킬 수 있다.
벌써 여름이다. 올 열대야는 또 어떻게 견뎌야 하나. 얼마 전 들어선 공항교 둔치 금호강 야영장과 피크닉장이 벌써부터 붐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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