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군 '국채보상운동 모금' 입증 문건 첫 발견

입력 2016-06-06 20:38:59

단연상채회 조직 서신·겉봉 공개

대구단연상채회에서 하양단연상채회로 보낸 공함과 그 서신. 김진만 기자
대구단연상채회에서 하양단연상채회로 보낸 공함과 그 서신. 김진만 기자

옛 하양군에서도 단연상채회(斷煙償債會)가 조직돼 국채보상의연금을 모금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건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는 국채보상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번에 발굴된 문건은 경산에 있는 조원경 (사)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이 소장하던 것으로 최근에 공개됐다. 이 문건은 하양군(1895년 설치돼 1914년 폐지)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료이다. 1907년 2월 초순 담배를 끊어 절약한 돈으로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로 발족한 대구단연상채회 총무 정규옥이 같은 해 4월 12일 하양단연상채회에 보낸 서신과 겉봉 등을 포함한 공함(公函'공사에 관해 왕래하는 문서나 편지)이다.

정규옥이 보낸 서신에는 '하양단연상채회에서 국채보상의연금과 성금성책을 보내주신 것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답장한다. 국민으로서 의무를 하려고 단연상채회를 조직한 것이 귀한 것이지 의연금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의연금 성책은 본부에서 잘 받들어 두었다가 상세하게 살펴볼 것이니 앞으로도 애써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다른 문건에는 정미년(1907년) 4월 초순 당시 하양군 안심면 회장 황석조가 본 면(안심면)에서 모금한 단연의연금 52원90전을 하양단연상채회 사무소에 보낸다는 확인서이다.

조 이사장은 "그동안 대한매일신보나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 신문 자료를 통해 당시 경산군과 자인군에서는 단연상채회가 조직돼 국채보상의연금을 모집해 접수했다는 자료가 있었으나 하양군 관련 자료는 없었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하양군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있었음을 처음으로 입증하는 문건"이라고 했다.

권대웅 영남대 국사학과 강사는 "1907년 2월 초순 대구단연상채회가 조직된 후 3월 13일 고령군단연상채회 조직 등 경북 각지에서 단연상채회가 조직됐다. 이번 사료는 하양에서도 의연금을 모집해 대구단연상채회에 보냈다는 것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한편,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 진 빚 1천300만원을 담배를 끊어 갚자며 1907년 1월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한 최초의 시민 국권회복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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