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탓? 이름 덕? 정말 운명을 바꾸기도 할까

입력 2016-06-03 19:31:00

이름의 인문학, 개명의 사회학

'너 이름이 뭐니?' 아이를 만났을 때 우린 제일 먼저 이름을 묻는다. 이름은 한 개인의 표식이고 대명사(代名詞)고 가상의 인격이다. 전통시대 이름에 대한 가치는 더 엄격하고 격조가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율곡 이이(李珥)의 이름은 모두 8개. 아명(兒名), 관명(官名), 자(字), 호(號), 시호(諡號), 별호를 포함해서다. 이런 까다로운 격식에서 좀 벗어났지만 현대에서 이름은 아직도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최근 '좋은 이름' 열풍을 타고 개명(改名) 현상이 심상치 않다. 매년 15만 명 이상이 '촌스러운 이름'과 결별 등을 이유로 법원을 노크한다.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긴 하지만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의 개명도 부쩍 두드러지고 있다. 이름을 바꾼 후 스타덤에 올랐다는 연예인도 있고 4.7년 만에 1승을 거둔 뒤 그 공로를 개명으로 돌린 프로야구 선수도 있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는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 개명에 대한 사회 현상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어 보았다.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뀌나

PGA투어 8승에 빛나는 최경주(46)의 본명은 '말주'였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골프 입문 전 '경주'로 이름을 바꾸었고 실제 '경주마'처럼 그의 인생은 질주하기 시작했다. 월드 스타 비의 이름은 정지훈이고, 유튜브 조회 25억 뷰의 싸이의 본명은 박재상이다. 이들 월드 스타는 모두 개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름을 바꾸면 실제로 운명도 바뀌는 걸까. 이름이 부족한 기운을 보충해서 새로운 운명이 열릴 수 있다는 작명가가 있고 일부 유명인의 사례가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는 신중론도 있다.

▶"이름을 바꾸면 재복이 날아가요"=이재박작명원에 중년 여성이 상담을 하러 왔다. 그의 이름은 '군자'(君子). 새 사업을 하려는데 이름이 촌스러워서 명함에 새길 세련된 이름을 찾아왔다고 한다. 이 원장이 보기에 이 이름은 재복(財福)이 깃든 것이어서 타일러서 보냈다고 한다. 얼마 후 이 여성은 실제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자기 가족들을 모두 보내 개명 상담을 받게 했다. 정작 자신은 개명하지 않았지만 이름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 가족, 직원들까지 작명소로 보냈던 것이다.

이 원장은 "이름의 성격이 부지런하고 성취욕이 강하면 재물복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이분의 경우 셋방살이부터 시작해 100억 자산가가 된 데에는 좋은 기운의 이름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여성=대구의 한 기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윤류경 씨의 두 번에 걸친 개명 사연도 재미있다. 출생 시 그의 이름은 '정혜'였으나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정헌'이 되었다.

그는 이 이름으로 대학까지 마쳤다. 결혼 후에 호적정리를 하면서 그는 본래 이름(정혜)을 되찾았다. "20년 만에 본이름을 찾았으니 모든 게 더 잘 풀릴 거로 생각했죠.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어요. 자꾸 주변에 갈등이 생기고 구설에 오르는 거예요." 윤 씨는 고심 끝에 다시 작명소를 찾았고 작년에 '류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신기하게도 개명 후에 골치를 썩히던 일이 해결되었고 영업실적도 좋아졌다. '위약효과'(플라세보)라지만 기분 좋은 변화에 윤 씨는 개명 효과를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녀 개명 후에 사업 번창='아들 형제 개명'을 통해 사업을 번창시킨 기업도 있다.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이 기업의 대표는 어느 날 자녀들 이름이 사업 운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즉시 아이들을 작명소로 데려갔다. 이 '조치'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녀들도 학업은 물론 건강한 품성까지 쌓으며 미래의 꿈을 키워 가고 있다. 백운철학의 최영태 대표는 "기둥을 크게 세워야 건물이 크게 올라가듯 타고난 운명에 부족한 부분을 이름으로 채워 주면 새로운 길이 트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개명 열풍은 왜곡된 사회 현상"=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금실이 좋지 않아 부부가 같이 작명 상담을 받았음에도 결국 갈라선 사례가 있고 이름 때문에 사업이 안 풀린다는 말에 많은 돈을 들여 개명했지만 끝내 부도를 피하지 못했다는 상담 사례도 있었다. 영남대 허창덕 교수(사회학과)는 "개명 열풍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이 외부요인에 기대려는 심리가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맹신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 삶의 태도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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