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입력 2016-05-16 18:22:01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책 읽기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진정한 책 읽기란 정보를 끌어 모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사키 아타루는 정보를 얻기 위한 책 읽기를 그만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든 정보와 멀어지기로까지 결심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다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잡지 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하는 말밖에 듣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가 정보와 멀어지겠다고 결심한 까닭은 정보의 명령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어떤 유용한 정보를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느 누구라도 그 정보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점에서 정보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공부를 하거나, 집을 선택할 때도, 결혼 상대를 찾을 때조차 정보를 모으는 이유는 정보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다. 배움 대신 입시 정보가, 내가 살고 싶은 집 대신 부동산 정보가, 사랑 대신 결혼 정보가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유용한 정보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지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변화는 정보를 끌어모으는 '책 읽기'가 아닌 '책을 읽어버리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책을 읽어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 권력의 타락이 극에 이르렀을 때 루터가 종교개혁이라는 대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단지 많은 정보를 끌어모았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때 루터의 책 읽기는 단지 책을 이해하는 수준의 읽기가 아니다. '오 맙소사, 내가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의 느낌에 더 가까운 것이다. 성서를 제대로 읽어버렸을 때 그는 책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이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책을 제대로 읽어버린다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처럼 잘라야 할 것은 세상의 변화를 빌기만 하는 기도하는 연약한 손만이 아니다. 책과 인터넷과 텔레비전, 유명 강사들의 강의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정보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수동적인 자세까지도 잘라야 한다.

얼마 전부터 대구미술관에서 '예술 읽기'라는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여느 강의들처럼 어떤 인물이나 이론에 대해 '넓고 얕게' 요약하지 않는다. 단지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토론한다. 어느 한 참가자는 "먹고사는 문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책을 읽으며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익이 아니라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책이 곧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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