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할매할배의 삶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

입력 2016-05-16 18:23:39

'여름이면 둥근 달 아래 마당에서 모깃불 피워놓고 할매할배를 중심으로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운다.'

1950, 60년대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손녀들을 할매할배들의 품에서 앗아 갔다. 세대는 단절되고 밥상머리에서 이뤄졌던 인성교육도 빛을 잃었다. 산업화의 역군이자 한 가정의 어른으로 존경받아야 할 할매할배들이 뒷방 늙은이로 취급돼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할매할배들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70세 이상 노인 10만 명당 116.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인 외국의 노인 자살률과 비교하면 최대 20배 차이 난다. 또한 지난해 OECD 자료에 의하면 2014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OECD 평균 빈곤율 12.6%)로 OECD 국가 중 1위이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청소년(10~19세)들은 어떤가? 여성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36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남학생들은 18위로 순위가 높지 않지만, 자살자 수는 5.15명으로 여학생을 앞질렀다. 학교폭력은 2014년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교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소집 건수가 2만1천130건으로 하루 평균 57.8건이다.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 단위인 가정도 위험수위다. 2014년 혼인 및 이혼 신고서 기준으로 혼인 30만5천500건, 이혼 11만5천500건으로 37.8%의 가정이 붕괴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청소년'가정 문제는 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으며, 찾았다 한들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해결책으로 '노마지지'(老馬之智)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안개가 자욱한 험한 산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늙은 말의 지혜를 비유한 말로 오랜 경험과 견문에서 오는 지혜는 생존에 매우 유익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뜻이다.

농경시대 할매할배들은 부모보다 더 존재감 있는 집안 어른으로서의 지위와 마을에서는 어르신으로 대접받고 젊은이들을 꾸중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존재였다. 가정에서 할매할배들은 대리모로서의 역할, 아이들의 신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역할, 올곧은 인격형성을 도와주는 훈육자로서의 역할, 각종 놀이와 동요를 비롯해 옛날 이야기를 전수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로서의 역할 등을 수행해 왔다.

유학의 기본원리가 담겨 있는 대학에서도 '한 집안이 어질면 한 나라가 어질게 되고 한 집안이 겸양하면 한 나라에 겸양하는 미풍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개인의 삶을 안정되게 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족공동체를 새롭게 복원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경북도는 조부모 중심의 가족공동체 회복을 통해 노인'청소년'가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할매할배의 날'을 만들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손자가 부모와 함께 할매할배를 찾아가서 세대 간 서로 소통하고, 할매할배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인성교육을 하며, 3대가 어우러져 가족공동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경북도 차원에서 매월 생활실천운동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앞으로 정부 정책으로 채택돼 할매할배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 정부 차원에서 확산해 가정이 튼튼해지고 사회가 따뜻해져 각종 사회문제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고향에 계신 할매할배를 찾아뵙자. 혹여 못 가게 되면 전화라도 드리자. 그리고 고향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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