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환경 숱하게 바뀌어도 지켜낸 '경맥의 혼'

입력 2016-05-12 22:30:02

1974년 고교평준화 이후에도 최고 명문, 한해 많게는 40명 이상이 서울대 합격

경북고 총동창회가 경북중
경북고 총동창회가 경북중'고 개교 117주년(대구고보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모교에 조성한 호국동산. 2'28민주운동 주역들을 기리고, 항일 독립투쟁과 6'25전쟁 당시 학도의용병으로 산화한 동문들을 현창하는 조형물 등을 세웠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경북고등학교는 1974년 고교평준화 시행 발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교 입시과정의 변화와 경제발전으로 인한 교육환경의 다양한 변화는 경북고가 전국 명문고에서 보통 일반고로 '전락'하는 것이었지만, 경북고는 이러한 변화의 파고를 이겨내고 명문고교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노력은 많은 성과로 이어졌다.

◆고교평준화와 경북고

1973년 2월 28일 민관식 당시 문교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일반계 고교의 학군제, 과정별 지원, 추첨배정을 골자로 하는 고교 입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고교 평준화'라 불리는 이 입시제도 개선방안은 이듬해인 1974년 12월 대구에도 시행됐다. 이 시기 경북고는 평준화 이후에도 명문고교의 전통과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학교를 중심으로 동창회, 학부모,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돼 노력을 기울인 시대라 요약할 수 있다.

평준화 시대의 고교 학생 선발 방식은 연합고사를 통해 신입생을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개인별 학력차도 평준화 이전보다 심했다. 게다가 1970년대 들어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치열한 입시 경쟁 또한 시작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경북고 구성원들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에 대한 결손학습 보충지도, 자율학습의 적극적인 권장, 능력별 수업 실시 등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은 우수한 입시 성적으로 나타났다. '진학'지 1978년 5월호에 따르면 경북고는 그해 13명의 재학생을 서울대로 진학시켰으며 재수생까지 합치면 82명의 동문이 서울대에 입학, 대구지역 고교 중 가장 많은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그리고 1978년부터 1985년까지 적게는 13명에서 많게는 40명의 재학생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인성교육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83년 경북고에서는 '조상을 바르게 알고 그 바탕 위에서 현재의 자기 위치를 정립함으로써 자신의 책무를 다하게 하자'는 취지로 '뿌리 찾기 교육'이 시작됐다. 입학할 때 '뿌리 찾기 카드'를 부모와 함께 작성해 제출하고, 재학 중에는 카드 기재 사항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자신의 결심을 굳게 다지고, 졸업할 때 졸업장과 함께 이 카드를 다시 가져가게 했다.

◆1985년, 황금동 시대 개막

1985년 경북고가 지금의 자리인 수성구 황금동으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1917년부터 70년 가까이 사용하던 중구 대봉동 교사는 너무 노후한 탓에 새로운 학교 건물이 필요했다. 동문들의 추억과 역사가 가득한 대봉동 교사를 떠나는 것에 대한 동창회의 반발이 없진 않았지만 '국내 최고의 현대식 학교를 건축하겠다'는 약속을 통해 동창회의 동의를 얻어 교사 이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학교 사회에도 다양한 '자율화'의 바람이 불었다. 문교부는 1982년 중'고교생 두발 자율화, 1983년 교복자율화를 추진했다. 경북고는 이런 자율화의 바람에도 명문고교로서의 면모 유지를 위한 치밀한 생활교육계획을 수립해 실천했다. 이 덕분에 대구시내 모든 학교와 비교했을 때 '가장 용모가 단정한 학생들'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1985년 학생, 학부모, 교직원, 동창회의 의견을 종합, 현재 경북고 학생들이 입고 있는 소매 끝에 3선이 있는 새로운 교복을 제정해 1986년 8월부터 착용에 들어갔다.

◆2000년 이후, 공립고의 새로운 모범이 되다

평준화 이후 경북고는 너무 잦은 입시제도의 변화와 공립고가 지닌 현실적 여건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북고의 행보는 공립고의 새로운 모범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공립고는 입시에 약하다'는 편견을 깨고 2005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전국 수석을 배출했고, 2013년 서울대 입시 실적에서도 경북고는 100위 안에 든 대구지역 고교 중 유일한 공립고교(9명, 62위)로 나타났다. 이는 주변 학교와 다른, 다양하고 창의적인 체험활동과 특별활동을 진행한 학교의 전략과 학생의 진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성과 흥미에 맞는 진학지도를 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1985년 당시 최신 시설로 지었다는 경북고 교정도 30년이 지나면서 꾸준한 보완과 변화가 있었다. 2003년에는 역사관이 개관했고, 2007년에는 도서관 '청운재'가 문을 열면서 경북고 재학생들의 학습 시설뿐만 아니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났다. 최근에는 담장허물기사업을 통한 학교 주변의 공원화가 이뤄지면서 경북고 교정은 '경맥의 혼'을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경북고 동문들은 지난 100년의 빛나는 과거를 안고 대한민국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빛내는 동량을 배출하는 곳으로서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경북고 동문들은 "대봉동에서 황금동으로 이어지는 경북고의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경북고 교육 가족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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