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처 괘불·수양도량 수도암, 대구경북 시도민의 '힐링' 사찰…비슬산 유가사

입력 2016-05-11 22:30:02

유가사 전경
유가사 전경

대구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비슬산 유가사(瑜伽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27년(신라 흥덕왕 2년) 도성국사가 창건했다. 절 이름은 비슬산의 바위 모습이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과 같다 하여 옥 유(瑜), 절 가(伽) 자를 따서 지어졌다.

889년(진성여왕 3년) 원잠이 중창하였으며 1047년(고려 문종 1년) 학변과 1452년(조선 문종 2년) 일행이 각각 중수했다.

전성기에는 3천 명의 승려가 머무른 대종찰이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1682년(숙종 8년) 도경이 대웅전을 보수한 데 이어 1729년(영조 5년) 취화와 파봉(巴峰), 1760년 보월, 1776년 밀암, 1797년 낙암이 각각 중수 또는 중창한 바 있다. 1976년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용화전'산령각'범종루'천왕각'백화당'나한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측면 각 3칸으로 내부에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1964년 우송(友松)이 제작한 칠성탱화와 신중탱화가 함께 모셔져 있다. 용화전은 정면'측면 각 1칸으로 내부에 높이 102㎝인 석조미륵불좌상이 있다.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로 석가모니삼존불과 후불탱화, 삼존불 좌우에 각 8폭씩 십육나한도가 있다. 산령각은 정면'측면 각 1칸으로 1976년에 조성된 산신탱화와 독성탱화가 자리하고 있다.

유물로는 괘불과 삼층석탑, 낙암과 월호(月湖) 등 15인의 승탑이 서 있다. 승탑은 모두 석종형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또 괘불은 가뭄과 질병, 왜군의 침략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찾아가 소원을 빌던 유물이이다. 삼층석탑은 1920년 인근 원각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높이 3.64m로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유가사 일대는 등산코스로도 유명하다. 유가사에서 북서편으로 500여m 떨어진 곳에 수도암이 나온다. 수도암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이름 높다. 극락전, 천태각, 산령각, 두 요사채가 있는 아담한 암자이다. 신라 혜공왕 때 역시 도성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암자 주변에는 낙암선사의 비문이 있다.

극락전 앞뜰에는 옛 전설을 간직한 거북바위와 가지가 4m 정도 뻗은 꽤 큰 떡갈나무가 있다. 1985년 성운 스님이 부임해서 사찰을 중창해 일신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유가사에서 위쪽 1.2㎞쯤 떨어진 비슬산 중턱에 위치한 도성암은 영남지역에서는 가장 유서 깊은 선원 중 하나다. 신라의 명승인 도성국사가 도를 통한 곳으로 전해진다. 암자 뒤 거대한 바위가 도통바위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혜공왕 때 도성국사가 도성바위 굴 아래 절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 후 고려 성종 때 성범대사가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을 열고 50여년 동안 수도할 때 상서로운 기운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고 한다.

현풍의 20여 신도가 해마다 향나무를 구하여 시주하였더니 향나무들은 밤만 되면 찬란하게 빛을 내 불전을 밝혀주었다는 것이다. 도성암 대웅보전에는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사명당 영정과 창건주인 도성국사의 진상(眞相)이 있다.

수도암과 도성암을 지나 주능선에 오르면 평원지대가 펼쳐지고 곧이어 억새풀과 수십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 서면 서남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보이고 멀리 가야산 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유가사의 주지는 호암 스님이며, 신도회는 곽동환(57) 회장이 맡아서 이끌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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