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한국인에게도 낯익은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이번에 지진이 휩쓸고 간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성(熊本城)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가토 기요마사는 성을 처음 쌓은 사람이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성안에 있는 '우토로'(宇土櫓)라는 망루의 원래 주인이다. 이곳에서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년을 보냈다. 현존 인물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는 238년간 구마모토 영주를 지낸 호소카와 가문의 직계 후손이다. 1993년 총리 시절 한일병합·태평양전쟁을 반성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일본 정치인이다.
구마모토성에 가면 웅장한 성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임진왜란 때 악명을 떨친 가토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묘한 느낌을 받는다. 목조건축물 중 옛날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우토로'라는 5층 망루가 유일하다. 임진왜란의 선봉장인 가토와 고니시, 두 사람의 끈질긴 악연과 원한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가토와 고니시는 평생 앙숙이었다. 둘은 성격과 종교, 행동 방식이 너무나 달랐다. 가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먼 친척으로 난폭했고, 고니시는 약재 무역상의 아들로 다소 유연했다. 가토는 불교 일련종의 열렬한 신자였고 고니시는 유명한 기독교 영주였다. 더욱이 둘의 영지까지 맞붙어 있었다. 가토의 영지는 현재의 구마모토시(市)였고, 고니시의 영지는 구마모토시와 인접한 우토시(市)였다.
임란 때 고니시는 1진 선봉으로 조선을 침략했고, 가토는 2진을 이끌었다. 정유재란 때는 반대로 가토가 1진, 고니시는 2진 사령관이었다. 둘은 끊임없이 다투고 모함하고 대립했다.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을 때에 가토는 이에야스 편, 고니시는 반대편에 서면서 운명이 엇갈렸다. 당시 가토가 고니시의 영지인 우토성을 함락하고, 망루를 자신의 성에 옮겨온 것이 오늘날의 '우토로'다. 얼마나 원한이 깊었으면 건물을 통째로 옮겨 왔을까. 일종의 전승 기념물이었다. 둘의 대립과 원한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숙적'에 잘 그려져 있다.
이번 지진에 '우토로'는 다행히 벽에 금이 가고 회칠이 벗겨지는 정도에 그쳤다. 구마모토성이 폐쇄됐다고 하니, 한동안 성을 구경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진 피해를 입은 구마모토의 조속한 복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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