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루∼검암리∼낙강정 12km 층층의 절벽과 솔숲·모래사장,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안동댐 보조호수에 가로질러 놓인 '월영교'에서부터 풍천면 구담습지까지 낙동강을 따라 47㎞에 이르는 '유교문화의 길'이 조성돼 있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가람길', '역사가 흐르는 유교문화길'은 안동의 성곡동 안동댐을 출발해 낙동강을 따라 안동민속박물관에서 안동 시내를 관통한 뒤 남후면 단호리 낙동강생태학습관을 지나 풍산읍 체화정을 거친다.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둘러서, 구담습지를 거쳐 풍천면 구담리까지 이어지는 도보여행 길이다. 안동의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낙동강 줄기를 따라 안동 곳곳의 명승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이 길을 따라 떠나면 안동의 속살과 역사, 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안동 영호루를 출발해 낙동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남후면 검암리와 검암습지, 낙암정과 상락대, 낙동강생태학습관, 낙강정과 단호샌드파크까지 12㎞에 이르는 '공민왕 길'을 소개한다.
◆농촌 인심'역사'자연의 숨결 느낀 '공민왕 길'
지난 16일 '내고장 순례길' 걷기에는 400여 명이 함께했다. 이른 아침 남후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새록새록 돋아나는 봄꽃이 그리운 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도시와 농촌을 잇는 내고장 순례걷기모임 14번째 코스는 공민왕 길로 잡았다. 남후초교를 출발해 무릉과 개곡리, 검암리를 지나 낙암정과 낙동강생태학습관으로 이어지는 12㎞ 길이다.
이 길은 농촌마을의 순박한 인심을 느끼고, 마을 고샅길과 아름드리 보호수의 멋스러움에 감탄하고, 낙동강 검암습지와 낙동강 둑길을 따라 국도와 자전거도로길을 걷고, 낙암정을 거쳐 낙동강생태학습관에서 여정을 풀었다.
이날 검암리 마을 주민들은 걷기에 나선 이들에게 오이 400여 개를 직접 준비해 나눠주면서 넉넉한 인심을 전했다. 이들은 농촌 아낙들의 인심을 뒤로한 채 바쁜 걸음으로 낙동강 둑길에 올라섰다. 둑길 입구에서 수령이 200년이 훌쩍 넘은 느티나무가 긴 팔을 벌려 따가운 땡볕을 가려주었다. 이 둑길에서 부산 낙동강 하구까지는 350여㎞에 이른다. 낙동강 검암습지는 물이 말라 숲으로 변해 버렸다.
길게 이어진 둑길을 지나 낙암정으로 향하는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오르자, 낙동강이 한눈에 펼쳐졌다. 'S' 자와 'U' 자로 흘러내리는 낙동강을 따라 모래사장이 눈부시다.
낙암정이 앉은 층층 절벽과 솔숲, 모래사장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착각하게 한다. 낙암정 절벽을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한 이들은 곧바로 낙동강생태학습관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허기진 배를 고구마와 빵, 막걸리 한 잔으로 채운다.
학습관 한쪽에 마련된 팔각정을 무대로 재능기부자들이 즉석에서 '작은음악회'를 마련했다. 시립합창단 중창단들의 신나는 노래에 박수가 절로 나오고, 징검다리의 통기타 선율에 어깨가 저절로 덩실된다. 배도 채우고 휴식도 취한 이들이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정겨운 풍경 속 길에는 공민왕의 한 서려
낙동강생태학습관을 출발한 길은 단호리의 상단지, 중단지, 하단지로 이어지는 농촌마을의 정겨운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건지산에서 세 갈래로 뻗어 내려오는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은 온갖 봄꽃들이 피고 지는 꽃동네. '단지'는 마을이 둥실한 단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고. '단호'는 바위와 언덕이 모두 붉은색인데다 마을 앞에 큰 소(沼)가 있어 붙은 지명이다.
하단지에서 낙동강자전거길을 만난 풍산들길은 벚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둑길을 일직선으로 걷는다. 빗물에 불어난 강물은 선비의 글 읽는 소리처럼 청아하고, 대지를 적시는 봄비 소리는 여인의 속삭임처럼 은근하다.
연분홍 산벚꽃과 연두색 신록이 나날이 짙어지는 4월의 산하는 산골 처녀의 얼굴처럼 화사하고 수수하다. 봄비라도 내려 이 산 저 골에서 산안개가 피어오르면 산하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출한다. 낙동강과 건지산을 벗한 공민왕 길은 바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속을 유유자적하는 길이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개경을 떠난 날짜는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1361년 음력 11월 병인일로 기록돼 있다. 공민왕 일행과 함께한 사람은 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두 번째 비인 이씨(노국공주에게 자식이 없어 이제현의 딸을 비로 맞이함), 그리고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明德太后)와 28명의 신하였다. 왕의 행렬치고는 초라한 피란길이었다.
공민왕 일행은 광주와 이천, 충주를 거쳐 조령을 넘어 용궁을 지나 1362년 1월 11일 안동에 도착했다. 안동부민들은 "왕이 어찌 다리가 없는 개울을 그냥 건너게 할 수 있겠는가"하면서 등을 맞대어 사람 다리를 만들어 왕을 그 위로 건너게 해주었다.
이것은 안동부민이 공민왕을 얼마만큼 열렬하게 환대해 주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렇게 안동에 도착한 공민왕의 한 서린 걸음걸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민왕 길은 고려 개국과 멸망의 역사를 함께 간직해오고 있다.
이날 길 걷기에 나선 김진호(47'안동 용상동) 씨는 "공민왕이 안동을 몽진 지역으로 선택한 것은 고려 개국 때 보여줬던 안동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첩첩산중, 강과 산이 둘러쳐진 안동의 지형 때문이었다"며 "이 길을 걸으며 공민왕이 느꼈던 백성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공민왕 길에서 만나는 역사의 흔적들
낙암정(洛巖亭)은 조선 전기 문신인 배환이 노년에 유유자적하던 소박한 정자.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은 조선 문종 1년(1451)에 흥해 배씨인 나암 배환이 처음 지었다.
순조 13년(1813)에 고쳐 지었고, 그 후 고종 18년(1881)과 1955년에 수리했다. 배환은 백죽당 배상지의 아들로 태종 1년(1401) 문과에 급제했다. 그 후 사헌부 감찰, 병조 좌랑 등을 거쳐 황해도, 전라도,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했으며, 진주목사가 된 후 병환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다시 길을 따라 낙동강을 거슬러 남후면 단호리에 이르면 낙동강생태학습관에 갈 수 있다. 마애리가 진성 이씨의 땅이라면, 생태학습관 뒤편 상락대(上洛臺)에서 바라본 강변 들판은 고려 말 명상이고 명장이며 뛰어난 외교가였던 상락공 김방경(1212~1300)의 땅이다.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 묻힌 김방경은 중앙 무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화려한 정치력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 아울러 당대 지성이었던 요요암의 신화상과 선시를 주고받고, 제왕운기를 집필한 이승휴와 학문을 논할 만큼 유불선 등 다방면에 뛰어난 식견을 보유한 지식인이었다.
상락대는 하늘이 비경을 감추어 두었다가 비로소 상락공을 통해 세상에 드러냈다고 할 만큼 주위 풍광이 수려하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검암습지가 보이고, 왼편으로 안동 김씨 천년 세거지인 회곡리와 수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강정(洛江亭)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 아담한 건물로 마애(磨厓) 권예(權輗) 선생의 정자다. 안동 권씨인 권예는 1516년 문과에 급제했다.
낙강정 옆으로 야영객들을 위한 생태휴양시설인 안동 단호샌드파크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안동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단호샌드파크캠핑장은 남후면 단호리 일원 3만3천927㎡부지에 총 58억원을 투입해 캐러밴 12대와 자동차 야영사이트 3면, 야영장 1곳 및 주차장, 농구장, 다목적 족구장, 화장실, 샤워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캠핑장이다.
특히 낙동강변의 넓은 백사장과 맑은 물을 활용한 최고의 가족단위 휴양공간으로 낙동강생태학습관, 낙암정, 마애선사유적지, 마애솔숲문화공원 등 각종시설 이용과 관람이 가능하다. 낙동강이 가져다준 천혜의 자원을 활용해 휴양과 휴식을 즐기면서 인근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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