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소송/ 안토니 F. 괴첼 지음/ 이덕임 옮김/ 알마 펴냄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한다. 이런 뉴스가 요즘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에 곧잘 오르고 있다. '동물학대' 뉴스다. 대표적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온갖 동물을 때리고 괴롭히고 심지어는 죽인 사례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은 데다 결국 가해자는 처벌됐다는 식이다. 동물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례도 최근 뉴스로 전해졌다. 그런데 현행 우리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이 직접적인 상해나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 네티즌들은 더욱더 분개했다.
동물보호와 복지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확산된 사회적 관심이 맺어내는 결실은 법 제정과 제도의 도입이다. 스위스에서 먼저 나타났다. 예를 들면 스위스에서는 2008년부터 자격증이 있어야만 개를 기를 수 있다. 운전과 차와 교통법규의 기본을 알아야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운전할 수 있듯이, 개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증명서를 발급받아 개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또 처음 개를 기르는 사람은 개 훈련 학교에 다녀야 하고 동물 관련 법규를 공부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의 변화를 요즘 우리도 겪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 반려동물 인구는 1천만 명에 이른다. 그런 만큼 동물보호와 복지에 대한 관심을 크든 적든 갖고 있고, 관련 법과 제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곧 있을 4'13 총선에서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각 정당은 다양한 반려동물 관련 공약을 제시해 놓은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반려동물 등록 대상 확대 등 현 시행책 개선을 ▷더불어민주당은 종견장 허가제와 TNR(개체 수 조절을 위한 유기동물 포획, 중성화수술, 방사) 법제화를 ▷국민의당은 지방자치단체 유기동물보호소 설립과 동물 복지 정부 부서 신설을 ▷정의당은 동물학대 처벌 규정 강화를 ▷녹색당은 동물보호 의무의 대한민국 헌법 명시를 공약으로 내놨다.
사실 스위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동물의 존엄성이 명시돼 있고 각 주마다 '동물 변호사'를 갖춘 동물보호 선진국이다. 저자는 3년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동물 변호사로 일했다. 동물 변호사의 업무는 피해를 당한 동물의 입장에서 검찰, 경찰과 공조해 범죄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동물이 사람에게 소송을 해 달라고 의사 표현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동물 변호사가 스스로 판단해 소송을 제기한다. 저자는 동물 변호사로 활동하며 소송 700여 건을 맡았다. 피고소인은 주로 동물을 의도적으로 학대하거나 방치한 동물 주인, 동물에게 잔인한 행위를 가한 사람 등이었다.
저자는 동물 변호사로 일한 경험과 30년 넘게 동물보호법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며 쌓아 온 고민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책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동물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동물보호의 법적 근거를 공고히 하자는 것이다. 그 논거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다른 사회나 인류의 문제는 모른 척하면서 동물보호의 법적 근거만을 마련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로 동물을 대하는 것이 버림받거나 성적 학대를 당하는 아동을 보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이 세상의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덜 중요한 문제도 분명 아니다. 나는 개인이나 사회 전체가 동물을 온당하게 대하고 양심적으로 대하는 방식을 통해 서로 어울려 사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이든 무지에서든 이러한 부분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생명에 대한 도덕적 경시로 이어지고 이는 인간의 관계에도 서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신체를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수준을 넘어, 동물을 인간의 '동료 생명체'로 인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동물을 단지 인간의 목적을 위한 생물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생명체로서 자기 보존을 하고 종의 특성에 맞게 살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돼야 생태계도 보존되고 지구도 건강해지며 결국 지구에 함께 사는 존재인 인간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28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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