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70배 삼성과 같은 규제…곤혹스러운 카카오·셀트리온

입력 2016-04-04 19:09:27

공정위, 65곳 대기업 지정

상호출자'채무보증 제한 규제

벤처, 글로벌기업화 손발 묶여

자산 5조쮡10조 조정 목소리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65개 기업집단을 대기업으로 지정했다고 3일 밝혔다. '상호출자'채무보증 제한 기업집단'에 카카오와 셀트리온, 하림, SH공사, 한국투자금융, 금호석유화학 등 6곳이 들어갔고, 지역에서 관심을 모았던 홈플러스와 대성은 제외됐다. 벤처로 시작한 기업이 대기업집단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지난해 61개였던 대기업은 65개로 늘었다. 그러나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대기업집단 제도의 각종 규제 때문이다. 벌써부터 카카오 등은 자산 규모가 자신보다 70배 큰 삼성과 같은 규제 도마에 올라야 하는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오락가락한 기준

현재 정부의 대기업집단 지정의 기준은 자산총액이다. 공정위는 매년 4월 1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1987년 도입된 상호출자집단 지정제도는 최초 자산 총액 4천억원 이상이 지정기준이었지만, 1993∼2001년 상위 30대 그룹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상위 30대 그룹만 규율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따라 2002∼2007년에는 자산 2조원 이상, 2008년부터는 9년째 자산 5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당시만 해도 약 40개(공기업 포함) 기업집단이 규율 대상이었지만,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올해는 대상 기업집단이 65개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도 올려야 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계에선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올릴 것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건의가 수용되면 카카오와 셀트리온은 물론 KCC, 코오롱, 아모레퍼시픽, 하이트진로 등이 대기업집단에서 빠지면서 규율 대상이 37개로 줄어든다.

이와 함께 획일적으로 '자산이 얼마 이상'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과거처럼 상위 30대 그룹, 또는 상위 20대 그룹만 상호출자집단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호출자제한 집단 지정 기준을 2008년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올린 후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대기업집단 관리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기준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진 몸집

공정위는 대기업 분류 기준을 2002년 자산 2조원 이상에서 2008년 5조원 이상으로 바꾼 바 있다. 8년이 지나면서 세상은 바뀌었고 눈만 뜨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M&A가 벌어진다.

기업 인수합병은 자본주의 꽃이다. 대기업은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을 인수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고, 중견 벤처기업은 타 업종 벤처기업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며 스스로 글로벌 기업이 된다. 그런데 이번 지정으로 벤처기업 성장 신화를 쓰던 기업들의 손발이 묶인 것이다.

세계 주력산업이 바뀌고 산업구조가 급속 재편되는 마당에 정부는 기업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선을 10조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것과 함께 기준도 자산총액만이 아닌 매출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룡기업 네이버가 자산을 5조원이 안 되게 맞춰(?) 대기업으로 크지 않으려는 이유다.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카카오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의 성장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자산이 348조원인 삼성과 5조원을 갓 넘은 셀트리온, 카카오 등을 같은 잣대로 규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추진에도 의구심

특히 공정위가 카카오를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지정하면서 금융당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인터넷 전문은행이 계획대로 출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인터넷은행 설립에 맞춰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제한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지만 입법 절차가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현행 은행법은 금융회사가 아닌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최대 4%(의결권 없는 주식 포함 시 최대 10%)로 제한하고 있다. 금융위는 당초 '대기업집단을 제외한 기업'에 한해 인터넷은행 지분을 최대 50%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기업 지정을 계기로 '대기업집단에 속한 모든 산업자본'으로 바꿔 은행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지만 대기업의 은행 진출에 부정적인 야당 등의 반대가 예상되고 있다.

한편 이번 대기업 지정에 빠진 홈플러스와 대성그룹은 한숨 돌린 분위기다. 자산 5조원이 넘는 홈플러스의 경우 MBK 파트너스라는 금융종합집단 PEF가 인수했다는 점에서 빠졌다. MBK 파트너스의 동일인은 금융사이기 때문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대성은 지난해 자산총액이 5조2천억원에 달했으나 올해 5조원 미만으로 떨어져 가까스로 대기업 지정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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