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무력감, 너를 어찌할꼬?

입력 2016-03-30 16:18:11

17년 동안 몰고 다니던 승용차를 바꾼 건 1년 반쯤 전의 일이다. 수리만 좀 하면 너끈히 20년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가족의 성화를 이기지 못했다. 물론 골동품에 유별난 집착이 있는 건 아니다.

깨끗한 새 차를 타면서도 가끔은 낡디 낡았던 옛 애마가 그립다. 사소한 접촉 사고가 났을 때 특히 더 그렇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타고 다녔을 대수롭지 않은 흠집에도 신경이 쓰이는 게 영 마뜩잖다. 때로는 새 자가용과 궁합이 맞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도 그럴 만한 게 18개월 동안 벌써 4차례나 범퍼를 교체했다. 주차장에 세워 놓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당한 접촉 사고만 두 번씩이나 있었으니….

얼마 전에 있었던 사고는 꽤 오랫동안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앞선 경우들과 달리 나의 부주의 탓이었지만 사고 처리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무력감(無力感)이 더 큰 원인이었다. 과실이 비슷하니 자차보험으로 처리하자는 보험사 직원의 '권유'나 예상 견적보다 수십만원이 더 늘어난 청구서를 들이미는 정비공장의 '횡포'에 저항할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사실 '스스로 힘이 없음을 알았을 때 드는 허탈하고 맥 빠진 듯한 느낌'이 어디 이뿐이랴. 국어사전만 해도 '스포츠경기에서 너무 벅찬 상대를 만났을 때~' '하는 일마다 제대로 안 될 때~'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등등의 예문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어쩌면 매일매일의 일상이 무력감을 일으키는 세상이다.

유권자라면 각 정당의 이번 4'13 총선 준비를 보며 또 한 번 무력감을 느꼈을 듯싶다. 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이 치졸한 계파 싸움으로 끝난 공천 결과에 노골적인 실망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죽하면 '정치인을 모두 인공지능(AI)으로 바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더욱이 대구경북에서는 공천장을 받고서도 당 대표가 도장을 안 찍어줘 출마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빚어졌다. 영화 '베테랑' 속 유아인의 대사 "어이가 없네?"가 저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심지어 새누리당 한 현역의원이 '무소속 연대설'을 경계하며 "대구가 흔들리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린다"고 말했다는 뉴스에는 말문이 닫힌다. 정말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처럼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무력감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힘'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 작은 실천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현실에 순응하기만 한다면 심리학에 나오는 '마틴 셀리히만의 개'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려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왠지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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