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박 대통령과 배신

입력 2016-03-24 19:27:10

방송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로 이방원(태종)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태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즉위 전후 조선 개국 공신들이 대다수 숙청되거나 그의 곁을 떠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 진영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배신의 정치인 또는 배신자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뜻을 같이하거나 지지하는 이들도 모두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은 한때 박근혜의 사람들이었다. 박근혜정부 탄생의 밑거름이 됐고, 일부는 국정 운영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이다. 모두 박 대통령을 떠났다. 이 대목에서 태종이 문득 오버랩 된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非박근혜계)도 넓은 의미에서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친이계(親이명박계)와 달리 상당수가 박근혜정부 탄생의 일'이등 공신이기도 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운영을 적극 뒷받침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아니, 친박계는 오히려 비박계가 국정 추진 과정에서 발목을 잡았다고 여긴다. 총선을 앞둔 이번 공천 과정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박 대통령 주변에 유독 배신의 정치인들이 많을까.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이들이나 '배신한' 사람들의 상황을 되짚어보면 정책적 측면에서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세와 관련한 복지정책, 재벌과 관련한 경제정책, 정치개혁 등에서다. 이런 면에서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나 국정 운영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주장을 펼 경우 배신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짓는 것은 지나친 삼단논법일까.

이 같은 인식이 고착화되면서 박 대통령 주변에 다른 주장이나 비판이 사라진 '예스맨'들만 포진할까 걱정스럽다. 앞으로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내쳐질 인사들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과연 누가 누구를 배신했을까.

혹여 쉬운 해고를 정당화한 노동법, 한일 위안부 협상 합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에 반대하는 절반 이상의 국민들까지 '배신의 국민'들로 낙인찍히지는 않을까. 조선 태종의 권력투쟁은 당시 왕조의 기틀을 세우는 시대 상황에 부합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21세기 백성들은 뺄셈보다 덧셈과 곱셈의 정치를 원한다. 3년여 전 '국민대통합'을 대국민 핵심공약의 하나로 제시했던 초심에 변화가 없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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