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한의학을 미신과 비과학으로 매도하고 오직 서양의학 의료 체계만을 강요하였던 일제강점기 역사의 상흔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그 폐해가 너무나 크다. 비록 해방 후 한의사라는 직능이 만들어졌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하위 법률제도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통합의학'을 모토로 동양의학을 크게 주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발전 중인 중국과 일본의 전통의학에 비해 우리 한의학은 일제 잔재의 제도적 족쇄에 묶여 국제 경쟁에서 점점 뒤처지고 있다.
만약 일제 36년 식민통치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한의학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했을까?
'한의사'라면 전통에만 집착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구한말 한의사들은 한의서를 집필한 다산 정약용에서 보듯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데다, 기술지식인의 관점에서 기존 부패한 양반 정치를 비판하고 신문물 도입에 누구보다 개방적이었다. 그런 혁신적인 인물이 많았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파 지도자들의 스승인 한의사 유대치(유홍기)는 KBS 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에서 주인공으로 조명되기도 했던 우리나라 근대화의 선각자이다.
이와 더불어 영국인 제너의 천연두 치료법인 종두법을 처음 도입한 지석영도 대표적인 개혁개방 인물이라 할 만하다. 지석영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의학을 배운 인물이다. 1907년 지금의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대한의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하여 양의사를 가르친 한의사인데, 한일병탄 이후 '의생'으로 강제 격하되었다.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선구자인 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동양의학은 '상한론'(傷寒論)이라 해서 전염병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한 데서 시작된 학문이기도 하다. 백신 접종 치료는 원래 동양의학의 인두법(人痘法)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인데, 이것을 발전시킨 것이 제너의 우두법(牛痘法)이다. 우리가 지금 흔히 쓰는 '면역력'이라는 말도 알고 보면 '역병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뜻으로 전통한의학 용어다. 따라서 인체 질병을 보다 잘 치료하는 데 동서양에 서로 통하지 못할 근원적 장벽이 존재할 수 없다.
요약하면, 대한제국의 한의사들은 서양의학 도입에 매우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이 없었다면 한의학과 서양의학 지식을 두루 갖춘 의료인들을 국립의료교육기관을 통해 점차 배출해나가 한의사와 양의사 구별 없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통합의학적인 한국 의료 체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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