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지시 없고 과학자 능력에 맡겨…실패 가능성 있어도 연구 지원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서 우리나라가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이 노벨상이다. 이렇게 수상하기 어려운 노벨상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한 연구기관이 이스라엘에 있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모델로 삼고 있는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이하 바이츠만연구소)가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올라선 비결을 현지 취재를 통해 알아봤다.
◆기술 '라이센싱', 매출 연 300억달러
바이츠만연구소는 1934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인 하임 바이츠만이 설립했다. 설립 당시에는 투자금을 댄 영국의 지브 가문의 이름을 딴 '지브유기화학연구시설'이라는 명칭의 유기화학 전문 연구소였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다음 해인 1949년 지금의 이름인 바이츠만과학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동안 3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2명의 이스라엘 대통령을 배출했다. 바이츠만연구소 소속으로 200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아다 요나스 박사는 "좋은 과학을 위한 환경 제공, 과학적 호기심(scientific curiosity)에 대한 존중, 실패 가능성이 높지만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구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과학을 추구하고 뛰어난 과학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바이츠만연구소가 천재들을 불러들인 비결이란 게 그의 진단이다.
특히 바이츠만연구소는 지적재산(기술)을 사업화하는 '기술이전'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1959년 설립한 기술이전회사 '예다'(YEDA'히브리어로 지식이란 뜻)를 통해 특허 관리와 상용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15년 기준 바이츠만연구소 지적재산으로 만들어진 제품 매출은 300억달러(36조원)에 달하고 있다. 다니엘 자이프만 바이츠만연구소 총장이 기술이전 매출로 바이츠만연구소가 벌어들이는 로열티 수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연간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예다의 사업모델은 지적재산을 기업에 라이센싱하는 것이다. 기술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특허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매수 기업에 넘어가고 나면 특허를 사들인 기업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기술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허가 성공적으로 출원될 경우 바이츠만연구소에 오는 특허 수익의 60%는 연구실에 재투자되고 40%가 개발자 개인에게 돌아간다. 특허를 개발해낸 연구자 개인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과학자에게는 그 어떤 보상보다도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최고 인재로 최고 성과 낸다
바이츠만연구소엔 교수, 과학자, 대학원생 등 3천500여 명이 재직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수학'컴퓨터'과학'물리'화학'생화학'생물학 등 다양하지만 기초과학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고의 인재를 등용, 최고의 연구성과를 낸다는 것이 바이츠만연구소의 모토이다. 연구소 내에는 250여 개의 연구그룹이 있고 그룹마다 전담교수가 있다. 교수마다 적게는 2, 3명에서 많게는 10명 이상의 연구진을 거느리고 전문 분야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바이츠만에는 교수 식당이 따로 없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평평한 문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배려이다. 과학자들에게 최적의 인프라를 제공하고 자유롭게 관심 분야를 연구하도록 지원하되, 어떤 강요나 지시도 하지 않는 것, 오로지 과학자들의 능력에 맡기는 것이 바이츠만연구소의 운영방식이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관심 있는 분야를 택하고 좋은 연구성과를 얻으면 바이츠만연구소가 그것을 산업 분야에 전달해주고 있다.
바이츠만연구소가 기초과학에 집중하고 있지만, 응용기술과학 분야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스라엘 생명과학분야 과학자 중 절반 이상이 바이츠만 출신이다. 10년 전 쥐의 몸속에서 인간 장기를 배양하는 데 성공해 그 명성을 높인 바 있다. 최근에는 미국 국립보건원과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간염과 알츠하이머병 등 11개 과제를 중심으로 바이오'의학 분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 4명 인터뷰
◆다니엘 자이프만 총장
"과학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다니엘 자이프만 총장은 "인재는 지식보다는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며 "과학자는 퀄리티가 높은 아이디어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당장 그 과학자를 평가하기보다는 15, 30년 앞을 내다보고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가 논문 수로 과학자들을 평가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입니다."
그는 기술이전 회사인 예다의 기본철학을 과학자는 연구에 몰두하고, 경영은 전문가가 맡는 철저한 분업 형태라고 소개했다. "바이츠만연구소는 지적재산을 팔지 않습니다. 대신 누구라도 바이츠만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을 수 있어요. 다만 기술을 가져간 사업가가 경영에서 성과를 못 내면 기술을 회수하고, 사업화에 성공하면 그 수익의 일부를 로열티로 받습니다." 이어 창조경제의 핵심은 인재 양성에 있다고 했다. 최고의 과학자를 선발해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마음껏 연구하도록 한다는 것. 그들의 아이디어에 투자하면 모험 요소는 크지만 장기적으로 효과를 거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 대구를 방문, 대구경북과학기술원도 찾은 적이 있는 자이프만 총장은 "한국은 개발이 잘 된 나라, 또 투자가 잘 이뤄지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의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 사람을 키우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초과학분야 연구에 투자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무디 셰브스 부총장
"원천 아이디어, 장기간에 걸친 인내심, 투자 자금. 이 세 가지야말로 창업기업 활성화의 필수조건이자 과학 혁명의 핵심입니다."
무디 셰브스 부총장은 예다의 성공 비결로 과학자들이 이뤄낸 원천기술, 60년에 걸쳐 축적된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인내심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코박슨이란 신경복합 약 물질은 1971년에 발견했지만 신약으로 만들어진 것은 16년이 지난 1987년이었습니다. 확신을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 게 성공의 토대입니다." 그는 "훌륭한 기초과학 없이는 짧은 경제성장만 가능할 뿐 장기적 혁신은 이루기 어렵다"며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20, 30년의 경제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조언했다. 셰브스 부총장은 "윗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많이 키운 것이 이스라엘의 힘이 됐다"며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 오늘의 바이츠만, 이스라엘을 만들었다"고 했다.
◆메나헴 루빈스타인 교수
분자생물'분자유전공학 연구자인 메나헴 루빈스타인 교수는 세계적인 과학자다. 1980년 바이츠만에 온 그가 연구한 인터페론(Interferon'척추동물의 면역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자연 단백질) 관련 물질로 만든 신약은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인 암젠을 통해 한해 7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올해 일흔한 살인 그는 "1970년대부터 연구한 물질이 신약으로 개발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같은 연구자인 아내가 큰 도움이 됐다"며 "과학자는 인내심을 가져야 하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찰력"이라고 했다. 감기 바이러스로 인한 세포 반응이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통찰력이라며 과학자는 이 같은 통찰력을 갖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낫 야르덴 교수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아낫 야르덴 교수는 바이츠만에서 고등학교 과학 교사들을 대상으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야르덴 교수는 "과학자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나온다"며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를 학생들이 가질 수 있도록 교사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교수법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무엇보다 과학 교사는 학생들에게 법칙을 가르치면 안 됩니다. 주입식 교육은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뉴턴의 제1법칙(관성의 법칙)을 가르칠 경우 법칙을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주위의 사물을 이용해 학생들이 흥미를 갖도록 하고, 학생들의 질문을 유도하는 게 올바른 학습법이라고 야르덴 교수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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