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외지 유출 안타까워…" 車용품 공장 고향서 경영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공장 입주 제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향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사업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청도 상공인협의회 4대 회장에 선출된 박상순(65'경동산업 대표) 회장. 청도 이서면 대곡리가 고향인 박 회장은 대구에서 자동차용품 전문 업체 기반을 다지자 청년 시절의 꿈을 잊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온 기업인이다.
그가 지난 2000년 청도로 공장 이전을 고집한 것은 자신이 너무 가난했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픈 기억 때문이다. 대구의 작은 지하실에서 시작한 경동산업은 청도 이전 15년 만에 연간 400만달러를 수출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1960, 70년대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우리 집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어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보니 집에 끼니가 없어 부대에 오가는 날을 빼고 꼬박 5일간 저수지에서 등짐을 날라 받은 밀가루 배급표를 어머니께 드렸죠."
박 회장은 군 제대 후 대구 방직공장을 전전하다 1983년 섬유업체를 창업했다. 이후 밤낮없이 일했으나 당시 섬유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1989년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당시만 해도 국내 자동차가 많지는 않았으나 곧 시대의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자동차용품 전문업체를 창업했다. 1990년 대구 수성구에 공장을 설립하고 꾸준히 신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액세서리 아이템 수십여 건을 디자인 실용실안으로 등록했고, 1990년대에는 차량용 범퍼 가드, 배터리 점프선, 냄새 없는 PVC매트 등이 큰 인기를 누렸다.
대구 공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그는 주저 없이 고향에 공장 부지를 마련, 2000년 청도 화양읍에 공장을 준공했다. 개발과 생산, 조립, 포장 원-라인(One-line)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장 확장과 함께 세계시장 진출만이 살길이라고 보고 두바이, 프랑크푸르트, 상하이 등 국제자동차부품 전시회를 쫓아다녔다.
"1998년 두바이 전시회를 아무 성과 없이 다녀온 지 2년쯤 지나 한밤중에 난데없이 휴대전화가 울렸죠. 두바이 바이어가 카탈로그를 보고 자동차용품을 사고 싶다며 전화를 건 것이죠. 밤새워 샘플 팩스를 주고받은 끝에 선적한 컨테이너 1개 물량이 첫 해외시장 개척이었습니다."
그는 이 무렵 야간대학에 다니며 낮에는 현장, 밤에는 경영학 등 주경야독을 이어갔다. 2002년 겨울, 공교롭게도 큰딸이 학사모를 쓰는 날 자신도 눈물의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나이 쉰을 넘은 만학도가 가난 때문에 다하지 못했던 학업을 이룬 것이다.
그는 사업이 자리 잡자 제일 먼저 선친의 빚을 갚기 위해 고향 동네 일대 17집을 일일이 찾아갔다고 했다. 이때부터 고향에 가지 않던 모친이 고향을 찾게 됐다.
박 회장의 경동산업은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다. 청도장애인보호작업장에 지난 10년 동안 자동차 부품 외주가공을 맡겨 현재는 연간 4천만원이 넘는 일감을 주고 있다. 일회성 기부보다는 자생력 증대 등 일거리 제공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연말엔 청도군에 노인복지기금 1천만원을 기탁했다.
박 회장은 "인재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기업이 성장하면 시너지 효과는 몇 배나 됩니다. 세계시장의 또 다른 변화를 파악해 지속적으로 좋은 자동차용품 개발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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