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을 맺자고 하는데, 대체 조약이라는 게 무엇이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6년 2월 10일, 회담장인 강화부 연무장에서 조선 대표로 참석한 신헌의 첫마디였다. 이 한마디는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조선은 관세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어 무관세 조약이 가져올 국가 경제의 파장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회담장에서 조선은 일본 대표인 구로다가 내민 13개조의 조약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2월 15일 조정회의에서 수용하기로 하고 만다.
지금으로 보자면 1876년에 한일 FTA를 맺은 셈인데, 조선은 아무런 준비 없이 공업 생산품 위주의 일본과 무관세 교역을 허락한 꼴이 되어 우리 국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고, 결국 국권 상실에까지 이르고 만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1910년의 국권 상실은 34년 전의 강화도조약에서 관세주권을 상실할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애초에 일본 대표는 협상에 앞서 "종가 5할 이하의 관세로 합의하라"는 훈령을 받고 있었는데 관세에 무지한 조선 대표들이 무관세에 동의해 주니 일어나 춤을 출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럼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칠레와의 FTA 협상을 시작으로 동시 다발적인 FTA 체결 전략을 추진하여 이제는 세계 3위의 경제영토를 가진 FTA 선진국이 되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FTA 체결국인 칠레와 인연이 많다. 1999년 1차 협상 참여를 시작으로 2004년 발효를 위한 양국 관세청장 회의에도 참석하면서 FTA의 처음과 마무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평생 한 번 가기도 어려운, 비행시간만 거의 24시간에 달하는 칠레에 자주 다닌다며 주위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FTA 협상과 이행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FTA 발효가 저절로 이익을 보장하지 않으며 모든 과정에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법인세나 소득세 등 내국세의 감세 혜택은 기업이 별다른 준비 없이도 활용할 수 있지만, 다른 FTA 감세 혜택을 보려면 기업의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협정별로 다른 원산지 결정기준에 맞춰 한국산임을 입증하는 원산지 증명서를 세관이나 상공회의소에서 발급받아 상대국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재료부터 각각의 가공 공정을 거쳐 최종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원산지 관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상대국에서 한국산이 맞는지 검증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원산지 입증 관련 서류의 보관도 중요하다. 인적·물적 자원이 빈약한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에 관세청과 대구본부세관은 중소기업의 원산지 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 상설 교육과 컨설팅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거래 형태, 가공공정 전반을 검토하여 원산지 결정 기준을 충족하는지, 어떻게 하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직접 찾아가 컨설팅도 해준다. 지난해 대구경북 지역 457개 업체, 3천200여 명에 대해 교육과 컨설팅을 실시하였는데, 올해는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달 말 일본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자 시중에 자금을 풀고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기 위해 초강수를 동원한 것이다. 우리 수출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FTA의 전략적 활용이 중요하다. 일본은 아직 중국과 FTA를 체결하지 못했다.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FTA 2년 차를 맞이하여 원산지 관리 등 더욱 치밀한 준비가 절실한 이때, 우리는 140년 전 강화도조약의 교훈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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