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에 쿵쿵 허는 소리가 나길래 다시 인공이 되았는가, 혔는디 그것이 아니고 독공장에서 독 깨는 소리여. 독 깨는 소리가 어뜨케나 큰지 인공 때 대포소리 같애. 그 소리에 놀래서 어미 뱃속에서 소새끼가 죽고 염생이가 죽고 갱아지가 죽고 닭이 알을 안 낳고 천지사방이 문지투성이라 깻잎싹 한나를 못 묵어. 그런디도 나랏님들은 '돈을 벌어야' 쓴다고 독공장 돌리는 것을 안 막어. 그렁게 디모를 헌 거여. 디모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여. 못살겄다고 악을 써도 암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암도 들어주는 디가 없으면 가서 악을 쓰는 것이 디모여. 디모를 다 해보고, 경찰서를 가보고 이 오맹순이가 말년에 꽃시절을 보내고 오네, 시방."
-꽃 같은 시절(공선옥, 창비)
할머니는 지금까지 경찰서에 딱 세 번 가봤습니다. 서방 징용 갈 때, 산사람한테 감자 줬다고 갔을 때는 찍소리도 못하고 오는 매만 맞았던 할머니가 아흔 살이 넘어 데모를 했다고 경찰서에 잡혀갔습니다. 할머니는 이전과 달리 거기 가서 악이라도 쓰고 왔으니 그나마 꽃시절을 보낸 것과 진배없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조용히 살다가 죽는 게 소원인 조용하고 순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는 조그마한 마을에 어느 날 불법 돌공장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은 위협받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지금까지의 삶의 모습대로 살아내고자 돌공장 앞에서, 군청 앞에서, 못 살겠다고 데모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돌을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 기사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기도 합니다. 대책위원장 이영희와 서울에서 시골로 글을 쓰러 내려 온 작가 서해정은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여기저기 호소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한 일은 어디서나 있는 일이며 이 나라엔 그것보다 더 급하고 큰일들이 많다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외침을 외면합니다. 그래서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한 순하고 약한 '항거'는 실패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순하고 약한 사람들의 순하고 약한 '항거'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순하고 약한 '항거'들이 가진 자들을 위한 '공익'이라는 이름 앞에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몸이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인간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마음을 달래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순하고 약한 '항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순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보전하며 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공익'에 이르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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