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현(69) 대구 서구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장의 자택 서재에는 다구(茶具)가 마련돼 있었다. 부인에게 번거로움을 끼치게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염려는 기우였다. 손 씨는 익숙한 팽주(烹主'차를 달여내는 사람)였다. "귀한 분이 오면 드리는 특별한 차입니다. 열 잔은 마시고 가십시오."
몇 년 전까지는 사무실에서 손님을 맞았으나 이젠 바깥보다 집이 편하다는 손 씨의 명함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봉사와 예절, 청소년지도를 강조하는 글귀들과, 그가 서당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제가 서구에서만 40년 넘게 살았습니다. 1993년쯤에는 자율방범대를 조직해 순찰을 돌기도 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지킨다'는 슬로건을 만들고 비행청소년을 만나면 타이르기도 하고 벌도 세우고 반성문을 쓰게 했지요. 하지만 그건 잠시의 훈계였을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진정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초소로 데려와 상담을 하고 인성교육 차원에서 '사자소학'(四字小學)을 가르쳤습니다."
비행청소년을 위해 시작한 한문 교육은 이내 규모가 커졌다. 초소에서 글 읽는 소리가 퍼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녀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몰려오면서 장소가 비좁아 이사를 했고, 달동네에 마련한 교육장이라 '요은서당'이라 이름 붙였다.
그 시절만 해도 형편이 어려운 집이 많았다. 그래서 손 씨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제공해 가면서 공부를 가르쳤다고 한다. "제가 목재소를 경영했기에 손수 의자를 만들고 서당을 꾸몄습니다. 출산율 감소로 서당을 찾는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들었지만 2012년까지 20년 동안 1천245명의 수료생을 배출했어요."
이제는 찾아가는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는 손재현 씨는 매주 월요일마다 초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방학에는 특강으로 예절교육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를 '훈장님'으로 부른다. 요은서당은 봉사단체의 요청에 의해 예절 강의를 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문득 봉사를 생활화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부모님은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습니다. 동냥 온 거지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아침상을 차려주셨거든요. 추운 날은 아궁이 앞에서 몸을 녹이고 가라고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접하는 인간애와 배려를 제가 배운 것이지요."
손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금융회사에 취직했으나 친척 형의 제재소에 들렀다가 직업을 바꿨다고 한다.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동업을 하다가,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됐다. 셋째 아이를 낳던 날까지도 남편 일을 열심히 도왔던 아내가 병원에서 영양실조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정말 미안했다는 게 그의 회고이다.
사업을 하면서 '있는 자는 가진 것에 감사하고, 어려운 사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그는 55세 되던 해에 은퇴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사업을 접기가 쉽지 않았지만, 젊은 고객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가가 이끌어 가는 게 좋다는 판단을 했다. 동시에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소홀하지 않았던 부모님을 본받아 사회봉사와 이웃돕기에 여생을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제 평생의 사업은 청소년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공부하면 오히려 제가 기를 받거든요. 그 아이들이 나의 스승인 셈이지요. 요즘은 새터민과 다문화가정,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전통혼례를 올려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기본은 '예'를 갖추는 것이며 예절 바른 나라가 강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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