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가정폭력 대책없나] <상>한 가족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

입력 2016-01-26 00:01:00

칼로 물베기서 칼로 해치는 '가족 잔혹사'

'맞고 사는 여성'으로 대변되던 가정폭력이 점차 잔인해지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부천 초교생 시신 훼손'유기 사건'에서처럼 가정폭력은 아동 학대나 엽기적인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가정폭력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공감대 형성과 함께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성들의 인식은 크게 변화했다.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이주여성이나 20, 30대 청년층 이 가정폭력 피해자로 나타나는 등 폭력의 양상이 다변화되고 있다.

◆"더 이상 참지 않아" 상호폭력도 늘어

여성 피해자들의 인식 변화는 가정폭력 상담 건수에서 드러난다. 여성가족부와 대구시가 지원해 운영하는 위기여성 지원기관 '1366센터'에 따르면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2011년 2천645건에서 2015년 5천382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가정폭력을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상담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신고나 상담 이후 여러 차례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도 크게 줄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재범률은 2011년 29.9%에서 2015년 0.8%로 급감했다. 1366센터 관계자는 "가정폭력을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예전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던 부분들이 수면 위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요즘 젊은 세대는 가정폭력을 참지 않고 곧바로 대처하다 보니 상담건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점은 가정폭력 사건에서 '여성 가해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상호폭력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부부 폭행에 있어 상호폭력이 발생한 비율이 2004년 2.9%에서 2014년 11.9%로 10년 새 4배 이상 증가했다.

◆새롭게 나타나는 가정폭력 현상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은 여전히 가정폭력에 취약하다. 다문화가정지원기관인 다누리콜센터(대구경북)에 따르면 2011~2015년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상담사례는 매년 300건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유일한 도움처인 상담'지원센터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주여성들의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및 정부지원여성센터 인지율은 각각 28.4%, 21.8%(2012년 기준)에 그쳤다. 국내여성의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소 인지율이 71%(2013년 기준)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강혜숙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버리면 합법적 체류 기간이 지나 미등록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이런 이주여성이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성인 자녀와 부모 간의 폭력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20대 후반 취업준비생 A씨는 대학졸업 후부터 함께 사는 아버지에게 '인간말종' '쓰레기' 등의 폭언을 듣는 게 일상이 됐다. 폭언을 퍼붓던 아버지가 A씨를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도 잦아졌다. A씨와 비슷한 처지의 B씨도 아버지에게 몇 차례 폭행을 당했고, 이후 '아버지 공포증' 때문에 집에 잘 들어가지 않고 있다.

이처럼 20대 캥거루족과 돌싱족 등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성인 자녀가 부모와 갈등을 겪고 골이 깊어지면 결국 폭력으로까지 번지는 것이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2부장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이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남편에게 맞대응하면서 가해자가 된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는 가족 간 갈등이 일방적이지 않고 부부간, 부모'자녀 간 할 것 없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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