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가 돌아다녀 죄송"…키 90cm ·몸무게 10kg '괴물쥐' 뉴트리아

입력 2016-01-23 00:01:00

농작물 닥치는데로 먹고, 굴 파서 댐·둑 붕괴 유발…낙동강서 서서히 북진

'괴물쥐'라 불리는 뉴트리아의 개체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22일 오후 경산 한 저수지에서 뉴트리아 퇴치 대원이 포획한 뉴트리아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안녕하세요. '괴물쥐'입니다. 생김새는 쥐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커서 그렇게 부릅니다. 꼬리를 포함해 키가 90㎝고 몸무게는 10㎏쯤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두세 살 아이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저희에게 붙인 이름은 '뉴트리아'(nutria)입니다. 토끼 같은 앞니와 개처럼 뛰는 모습 때문에 '물토끼'나 '민물개'라고도 불렸죠.

제가 사는 곳은 금호강 안심습지입니다. 이곳은 몇 년 전 저희 가족이 둥지를 튼 곳입니다. 먹이도 많았고, 물살도 세지 않아 가족들이 살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강 중간중간에 머리를 내민 작은 섬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털 고르기를 하며 정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멀게는 4㎞까지 오가며 먹이를 찾았습니다. 벼와 고구마, 양배추 같은 농작물을 좋아하고요, 갈대와 같은 수변식물도 잘 먹습니다. 하루에 1㎏ 정도 먹으면 배가 든든합니다.

사실 저희는 뼈대 있는 뉴트리아 집안입니다. 저희 선조는 남아메리카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85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저희를 키워 고기는 먹고 가죽은 모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팔기가 어렵고 찾는 이도 줄자 강이나 호수에 버렸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산과 김해 등 낙동강 하류 근처에 터를 잡았습니다. 지금도 저희 종족의 90%가 넘는 8천여 마리가 낙동강 하류를 터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행복했던 날도 잠시. 지난 2009년 저희 종족에게 '생태계 교란 생물'이라는 낙인을 찍은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덫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잃은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할 수 없이 피난을 떠났습니다. 안전하고 겨울에도 따뜻하며 먹이가 더 많은 곳을 찾아 낙동강을 따라 올라왔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만난 곳이 금호강이었습니다. 사람들도 뜸하고 덫도 없었습니다.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아 겨울나기도 좋았지요.

사람들은 굴을 파 들어가는 뉴트리아의 생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저희는 제방에 15~40m 굴을 뚫고 삽니다. 위험이 닥쳤을 때 몸을 피하거나 쉴 때 드나들기 쉽도록 출입구도 5~10개가량 만듭니다. 이 굴 때문에 둑이나 댐이 내려앉거나 농작물의 뿌리가 상한답니다. 먹이를 뿌리까지 남김없이 먹는 식성도 문제라고 합디다.

이제 금호강도 안전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미 사람들은 2년 전부터 저희를 잡기 위해 금호강을 뒤졌습니다. 그해에만 150마리의 동료와 친지를 잃었습니다. 지난해는 아예 퇴치단이란 이름으로 금호강에서만 265마리를 붙잡아 갔습니다.

올해 저희를 잡는 사람들이 늘고 덫의 숫자도 늘었습니다. 이제 더 상류로 가거나 다른 지류로 터전을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추운 겨울, 다시 이삿짐을 쌉니다.

*이 기사는 대구환경청의 '뉴트리아 퇴치 추진 결과 및 계획'과 국립생태원의 '전국 뉴트리아 서식 실태 조사'(2014) 등을 바탕으로 뉴트리아의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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