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 수술 500례 대기록, 90% 넘는 생존율 '간 박사'
전체 인구의 50%, 경제력의 65%, 국세(國稅) 수입의 75%를 차지하고 있다는 국부(國富)의 블랙홀 수도권. 의료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전체 의료기관의 절반이, 입원 병실의 30%가 서울, 경기에 집중해 있다고 한다.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이른바 '빨대효과'가 본격화되면서 지방 소도시 환자들의 수도권 유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수도권 의료 집중에 '이의 제기'를 외치고 있는 의사가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간이식센터 최동락(55) 교수가 바로 그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의문이 들 법도 하지만 그가 내미는 데이터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최 박사를 주치의로 두고 있는 간이식 환자는 700여 명. 이 중 절반 이상이 강원, 충청, 호남 등 외지 환자고 심지어 서울 환자도 상당수다. 2001년 대구가톨릭대병원에 간이식센터를 열고 환자를 받기 시작한 지 15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빨대이론'을 뒤집고 '분산(分散)효과' '역(逆)빨대이론'을 새로 쓰고 있는 최 교수를 그의 진료실에서 만나봤다.
◆아산병원 이승규 박사와의 운명적 만남
1994년 최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레지던트 외과에 지원했다. 3D 업종으로 불리는 외과를 지원한 이유는 '이왕 의사의 길로 접어든 거 고생도 하고 폼도 나는 분야를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당시엔 간절제술이나 간이식이 거의 걸음마 단계였다. 서울에서도 몇몇 대가(大家)들만 시술을 하고 지방에서는 엄두도 못 낼 때였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 간이식 수술의 선구자 이승규 박사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이 박사가 간이식 연구, 수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우리나라 간치료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되는 첫걸음이었다. 최 교수는 아산병원에서 전공의, 전임의를 거치면서 수술부터 면역치료, 환자 케어까지 모든 과정의 실무와 이론을 익혔다.
"전공의 시절 집에 들어간 날은 1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간이식은 외과 테크닉도 정교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수술 환자들의 감염 예방 관리입니다. 실시간으로 염증 반응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 소파 취침이 일상화돼 있었습니다." 간이식 수술의 성공 여부는 수술 이상으로 사후 감염 관리에서 판가름난다. 환자의 상태에 따른 면역제의 용량 조절이 초반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작년 간이식 생존율 97% 기록 수립
2001년 대구가톨릭대병원 외과 조교수로 온 최 교수는 2년간 간이식센터 개소 준비를 거쳐 2003년 첫 간이식 환자를 집도했다. 이때를 시작으로 2008년 100례, 2012년 300례, 2013년 400례를 거쳐 작년 5월에 500례를 달성했다.
지방에선 처음이고 전국을 통틀어서도 6위 안에 드는 기록이다. 특히 이승규 박사의 전매특허였던 공여자 2명의 간을 이식하는 '2대1 수술'이나 혈액형이 다른 사람끼리의 이식, 간'췌장 동시 수술 같은 고난도 수술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한강 이남 최고의 간이식센터로 명성을 쌓아갔다.
이런 양적 성장과 함께 전국에서 최 교수를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90%가 넘는 생존율 때문이다. 특히 작년에는 97%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의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국 유명 병원들의 생존율이 85%대에 머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록이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다.
"간이식 환자의 실패(사망)는 대부분 폐렴이나 패혈증 같은 감염이 원인입니다. 이식 환자는 반드시 면역억제제를 쓰게 되는데 이 약의 양 조절에 따라 환자의 치료가 결정됩니다. 우리 병원에선 이미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환자 케어 외에 외과수술 기법에서도 최 교수의 접합 기술은 외국의 논문에 인용될 정도로 명성이 높다. 그중 최 박사의 트레이드마크는 '간정맥문합술'.
"간동맥이나 간문맥의 미세혈관 접합 기술은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어요. 다들 매뉴얼대로 가고 있어요. 저는 분야를 조금 달리해서 간과 심장을 연결하는 간정맥의 접합에 많은 노하우와 기술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이 분야만큼은 외국의 어느 병원과 견주어도 자신 있어요"
◆생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삶 지탱
지금은 '간 박사'로 전국적 명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최 교수가 처음부터 간이식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레지던트 시절, 간이식 의사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에 와서는 좀 편히 진료를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품성은 그를 놓아두지 않았다.
"환자들이 암 진단만 받으면 서울로 간다고 보따리를 싸는 거예요. '이 시술은 내가 서울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오기가 생겼고 이런 결심이 결국 간이식센터 설립으로 이어진 거죠."
최 박사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처음 몇 차례 필드에 나갔다가 이식 환자 응급 콜을 몇 번 받고는 이내 골프를 접어버렸다. 대신 틈틈이 걷기 운동을 통해 하체 근력을 키우고 있다. 5~12시간씩 걸리는 수술에도 견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골프 사절에 철저한 자기 관리까지. 이런 습관은 그의 사부인 이승규 박사를 많이 닮았다. 슬쩍 '리틀 이승규'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물으니까 바로 손사래를 친다. 그냥 사부를 닮고 싶을 뿐이고 지방에서 열심히 의술을 갈고닦는 것이 그분의 학은(學恩)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오늘도 그는 밤늦도록 간이식센터 외과병동 회진을 돈다. 이식 환자들한테는 무엇보다 밀착케어가 필수고 처음 며칠은 24시간 실시간으로 환자 상태를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과의사 이혼율이 제일 높대요. 골프도 못 치고 사생활도 없는 이 짓을 왜 사서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를 붙잡아두는 '조그만 책임감'이 없었다면 벌써 때려치웠겠지요." 그 책임의식이 기자에겐 '생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들렸다.
◇수술비 서울 병원의 절반 수준, 강원·충청·수도권에서도 환자가 내려올 정도
가톨릭병원 간이식센터는…
"대구가톨릭대병원의 간이식 수술 비용은 4천만원 선입니다. 서울의 60%밖에 안 돼요. 서울 오가는 교통비와 간병 비용을 계산하면 거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런 가격 경쟁력 때문에 서울에서도 환자들이 대구로 내려오고 있어요." 최동락 박사가 말하는 대구가톨릭병원 간이식센터의 장점은 무엇일까.
-가격 경쟁력의 원인은?
▶서울 대형병원의 경우 병원 운영, 부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고가의 검사비도 환자 부담이다. 우리 병원은 최소의 인력과 비용으로 최고의 환자 만족을 산출하고 있다.
-의료 장비에서 밀리지 않는가.
▶그 반대다. 서울에선 오래전부터 간이식을 해왔기 때문에 노후된 장비들이 많다. 우리는 센터 오픈 때 최신 장비를 완전 설치했다. 장비의 사양이나 판독 능력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중국에서 수술받고 위험에 처한 환자를 살려냈다는데.
▶한 환자가 중국에서 간이식을 받고 중증 폐렴에 감염돼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현지에서도 치료를 포기하고 전세기를 타고 귀국해서 우리 병원으로 왔다. 우리 센터에서 치료에 매달려 6개월 만에 환자를 살려냈다. 환자의 상태에 따른 면역제 용량 조절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외에도 그런 사례가 몇 건 더 있다.
-환자들 사이에서 '나쁜 의사'로 불린다는데.
▶나쁜 의사는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잔소리 많이 하는 의사'다. 장기이식 환자의 경우 초기 면역, 감염예방치료가 끝나면 의사의 역할은 대략 끝난다. 그때부터는 환자 자신의 몫이다. 나는 심할 정도로 환자들에게 운동을 강요한다. 수술의 승패를 가르는 건 면역력과의 싸움이다. 많이 움직여야 신진대사가 되고 소화가 잘 돼야 힘이 난다. 병실에서 게으른 환자는 나에게 잔소리를 많이 듣는다. 누우면 계속 '눕게' 되고 걸으면 '살게' 된다.
◆최동락 교수는
1961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달성고(1980)와 경북대(1989년) 의대를 졸업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인턴을 거쳐 서울아산병원 외과 전공의, 전임의, 촉탁의를 거쳤다. 2001년부터 대구가톨릭대병원 외과 조교수를 역임했고 2005년부터 동 병원 외과 교수 겸 장기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2년 간이식 수술 300례에 이어 2015년 5월 간이식 500례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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