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배운다] (3)이스라엘 만든 교육…(상)창의성 북돋우는 도떼기 교실

입력 2016-01-20 00:01:00

당돌한 질문과 활발한 토론 "두 사람 모이면 세 가지 의견 나온다"

이스라엘 북부 테판스쿨 9학년 수업 모습. 복도에서 교사와 함께 빙 둘러앉아
이스라엘 북부 테판스쿨 9학년 수업 모습. 복도에서 교사와 함께 빙 둘러앉아 '이 학교에 계속 다닐 것인가' '존경하는 인물' 등을 주제로 토론 수업을 하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이스라엘 초등학생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딱지놀이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초등학생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딱지놀이를 하고 있다.
헬리
헬리

◇이스라엘 13명 한국 1명 '노벨상'…질문+토론 통한 창의성이 '해답'

"질문과 토론이 노벨상 수상자를 만듭니다." 200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아론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최근 이스라엘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대 석좌교수이기도 한 그는 또 "당돌한 질문을 꺼리는 한국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토론 중심의 교육이고, 학생은 '선생이 항상 옳다'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합니다. 한국 역시 토론을 하고 선생에게 당돌하게 반대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랍비-제자 대화를 담은 '탈무드'를 토대로 교육하는 이스라엘은 교육 현장은 물론 사회 전반에서 질문과 토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두 사람이 모이면 세 가지 의견이 나온다"는 이스라엘 격언도 토론과 질문, 이것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창의성에 주안점을 둔 말이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 같은 해 건국했다. 그 이후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은 1명에 불과한 반면 이스라엘은 13명이나 된다. 인구(한국 5천100만 명, 이스라엘 830만 명)를 고려하면 이스라엘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경이롭다. 유대인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면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이 3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인구 1만 명당 과학기술자가 140명으로 미국 83명보다 크게 앞선 세계 1위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이 같은 결과를 가져온 비결은 뭘까. 많은 전문가는 질문과 토론을 통해 창의성을 배양하는 이스라엘 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테판스쿨

등하교 시간 없는 자유로운 학교, 교사·학생 복도서 가족처럼 대화 …주제는 '이 학교 계속 다닐건가'

이스라엘 북부 크파브라딤(히브리어로 '장미의 마을'이라는 뜻)에 있는 테판스쿨을 찾았다. 이 학교는 3세부터 18세까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같이 다니는 학교다. 학생 수는 500여 명가량.

취재진은 14, 15세인 9학년(우리의 중학교 3학년에 해당) 수업을 참관했다. 담임인 리나 코헨 교사와 학생 10여 명이 빙 둘러앉았다. 이들이 수업하는 곳은 교실이 아닌 복도. 더 놀라운 사실은 토론 수업의 주제였다. '이 학교를 계속 다닐지, 아니면 다른 학교로 갈 것인지'를 주제로 서로 의견을 나눴다. 학생들은 학교의 장'단점을 두고 교사는 물론 다른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했다. 토론은 영어로 진행됐다.

이 학교 학생-교사 관계는 취재진에게 매우 낯설게 다가왔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쉽게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가족끼리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9학년 토론 수업은 '존경하는 인물'로 이어졌다. 한 학생은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얘기를 잘하는 우리 할아버지를 존경합니다." "나도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를 존경한다"는 학생들의 말이 이어졌다. 그다음 토론은 여행하고 싶은 나라와 그 이유였다.

유대교 전통인 '하브루타'(짝'친구라는 뜻의 히브리어) 토론 문화가 이스라엘 교육 현장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토론이 가진 장점은 무궁무진하다.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고, 개개인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일깨우며,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인다. 절차의 중요성과 예의범절의 가치를 습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연세대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한 이스라엘 외교관은 두 나라 학교 교실의 차이점은 질문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학생들이 수업 때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 교사와 토론을 거쳐 스스로 답을 얻는 반면 대부분 한국 학생들은 질문 없이 조용히 수업을 경청한다는 것이다.

테판스쿨은 학부모들이 만든 학교다. '이런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담아 1992년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정해진 등'하교 시간이 없어 학생들은 학교에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집에 갈 수 있다. 한마디로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학교다. 7학년인 한 학생이 스페인어로 수업을 받고 싶다고 하자 학생 한 명을 위해 스페인어 교사를 채용할 정도로 '학생을 위한 학교'로 자리 잡았다. 이 학교 학생의 학부모이기도 한 리나 코헨 교사는 "학생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교사와 학생이 같이 찾고 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우리 학교의 교육 목표이자 지향점"이라고 얘기했다.

◇재학생·졸업생이 본 테판스쿨

"선생님과 일대일 대화…공부 매우 재미있어, 아이들 그룹별로 뭉치지만 '왕따'는 없어요"

테판스쿨 4학년인 리나(9) 양은 "학교 공부가 매우 재미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잘해 줘 즐겁게 학교에 다녀요. 시험이 없고 성적을 안 매기는 것도 좋아요." 댄서가 되는 게 리나의 꿈이다. 발레와 현대 무용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구구단을 외우려 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구구단을 외우지는 못하지만 곱셈은 잘 한다"고 덧붙였다.

12학년인 헬리(17) 양은 히브리어에 러시아어, 불어, 영어에 능통하다. 졸업반인 그녀는 "무엇보다 토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성을 북돋워 주는 게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했다. 군에 다녀와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겠다는 헬리 양은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목표는 뚜렷하다. "무엇보다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힘들어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보조교사로 일하는 야엘(19) 양은 테판스쿨 졸업생이다. 군에 가기 전 모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이 일대일로 대화하고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게 우리 학교의 장점이지요. 가족과 같은 따뜻한 분위기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에도 왕따가 있느냐는 물음에 야엘 양은 "아이들이 그룹별로 뭉치지만 한 아이를 따돌리는 일은 없다"고 얘기했다. 제빵사가 꿈인 야엘은 대학입시도 있고, 고등학교 성적도 관리해야 하지만 군에 다녀와서 대학에 갈 생각이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스라엘-한국 교육 차이점 3가지

한국과 이스라엘의 교육제도는 닮은 점이 많다. 정부 조직에 교육부를 둔 것, 국가 인재양성을 표방한 교육이념, 6-3-3학년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1)교실 분위기

이스라엘 교실은 도떼기시장처럼 소란스러운 반면 한국의 교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전자는 조를 나눠 토론하느라 목청을 돋우는 바람에 벌어진 광경이고, 후자는 입시 지옥에 떨어져 수업에 흥미를 잃어 벌어진 모습이다. 둘 다 공교육 시스템을 가졌지만, 두 나라 교실 모습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2)교육 방식

이스라엘은 3~5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글자는 물론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들의 자율성과 잠재성을 스스로 일깨우는 데 집중한다. 학습 교재인 '놀거리'의 선택도,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는지도 아이 스스로 깨닫도록 교사는 지켜보며 도울 뿐이다. 영어를 비롯한 조기교육에 몰두하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3)창의성

구구단을 외우는 일이 이스라엘에서는 없다. 2학년과 3학년이 되면 곱셈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암기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어린이들이 머릿속에서 암산을 통해 곱셈을 해내는 습관을 들여 결국 4학년 말이 되면 구구단을 암기한 사람처럼 곱셈을 척척 해낸다. 수학 교과서는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만들게끔 되어 있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봄으로써 그 주제를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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