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모지랑비도 해 바뀜을 안다

입력 2016-01-12 00:01:00

정초부터 나라 밖에서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심상찮다. 중국발 증시 폭락은 하루가 멀다며 지수를 계속 끌어내린다. 김정은의 핵실험 도발은 한반도 안보 지형을 또다시 뒤흔들어대고 있다.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우리 경제에 이로울 것이라고 봤던 국제 유가 하락도 골칫거리다. 급기야 연초에 두바이산 원유가 배럴당 20달러 아래로 추락하면서 환율이 치솟고 금융시장에 불안감을 끼얹고 있다. 결코 달갑지 않은 악재들로 지금 민생은 살얼음판이다.

수출 부진은 이제 상수(常數)다. 따 놓은 당상처럼 여겼던 무역 1조달러의 둑이 4년 만에 무너졌다. 수출이 1%포인트 늘면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지만 문제는 우리 체력이다. 최근 몇 년새 한국 경제의 체력이 날로 떨어지면서 성장률 3%에 턱걸이하기도 어렵게 됐다. 구조 개선 등 체질을 바꾸는 노력을 게을리한 탓이다.

경영난에 몰리자 회사마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밀려 나온 50대 가장들 천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 볼멘소리는 이제 아우성이 됐다. 이렇듯 목이 바짝 타들어가는데도 우물 두레박줄을 쥔 국회는 급할 것 하나도 없다는 투다. 여당은 4'13 총선 180석 어쩌고, 야당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세포분열에만 신경 쓸 뿐 내상이 심각한 민생에는 관심이 없다. '새누리' '더불어' '국민' 등 요란한 간판 내걸고 '깔' 맞춘 스카프를 목에 두르지만 국민 얼굴은 흙빛이 된 지 오래다.

선거구 문제를 놓고 여야가 몇 달째 샅바만 당겼다 풀었다 허송세월하는 바람에 각종 개혁 법안들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이리 뗐다가 저리 붙였다 선거구 가위질만 하다가 기어코 해를 넘기면서 법정 선거구가 모조리 없어진 것은 더 황당하다. 선거구도 없는 금배지들이 구역 다툼에만 골몰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감투만 생각하는 '정치 저두족(低頭族)'이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19대 국회는 최악이다. 그러고도 국회의장은 "god only knows"라고 한가한 소리나 해대고 있으니.

우리 속담에 '섣달 그믐이면 모지랑비도 제 집 찾아온다'고 했다. 섣달 그믐에는 이리저리 빌려주거나 남의 손에 들어간 잡동사니까지 다 찾아들이고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새해를 새마음으로 맞기 위해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거나 빚도 모두 청산하는, 우리의 오랜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조상들은 끝이 다 닳아 별 쓸모없는 몽당 빗자루까지도 해 바뀌기 전에 주인을 찾아주는 게 도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정치판은 맺고 끊는 맛이 전혀 없다. 있다면 제자리 보전 욕심뿐이다.

총선을 90여 일 앞두고 대구경북은 '진박' '원박' '친박' 타령이 늘어졌다. 오로지 '박 타령' 한자락 길게 뽑으면 된다는 저급한 정치 마케팅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타령이 당선 통지서로 둔갑할 거라고 믿는다면 이는 지역 유권자에 대한 무시이자 무지(無知) 정치다.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찬바람이 안방까지 들이닥치는데도 자리 따지고 표 계산하기 바쁜 정치 저두족 때문에 속이 다 뒤집어질 지경이다.

국정 컨트롤타워의 공백도 위태롭다. 국정 운영이 어렵다며 국회를 윽박지르지만 청와대나 정부의 목소리가 국민 귀에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장관 후보자들은 변함없이 재산'자녀 특혜 문제로 진땀을 빼고 있다. 이러니 용하게 그 자리에 앉더라도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나 싶다. 울타리가 부실하면 가장 먼저 손을 봐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집주인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와 정부가 손 놓고 남 탓만 하고 있으면 온 식구가 삭풍에 몸을 떠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회와 정부, 정당이 미세먼지처럼 계속 하늘을 뿌옇게 가리고 해로운 먼지만 쏟아내면 내일에 대한 국민의 희망은 '헬조선'에 계속 묻힐 수밖에 없다. 새해에 집집마다 살림살이가 조금 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정치판을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것은 국민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