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이 고생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
김득신
매양 내 성품이 시에 푹 빠졌어도
시가 와서 읊조릴 땐 글자마다 망설이네
망설임이 없어져야 비로소 맘에 드니
한평생 이 고생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
爲人性癖每耽詩(위인성벽매탐시)
詩到吟時下字疑(시도음시하자의)
終至不疑方快意(종지불의방쾌의)
一生辛苦有誰知(일생신고유수지)
*원제: 謾吟(만음: 생각나는 대로 읊음)
조선 후기의 시인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 그는 우리 역사상 저명인사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극히 아둔했던 인물이었다. 얼마나 아둔했던지 그의 아둔함을 보여주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수두룩하게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아둔함을 천문학적 독서로 극복하고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김득신의 이와 같은 광적인 독서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가 67세 때 쓴 '고문삼십육수 독수기'(古文三十六首 讀數記)다. 중국의 대표적인 명문 36편을 각각 몇 번씩 읽었는지, 그 읽은 횟수를 기록한 글이다. 이에 따르면 김득신은 36편의 중국 명문을 최소한 1만3천 번에서 2만 번씩이나 읽었다고 한다. 특히 사기의 '백이전'(伯夷傳)을 몹시도 좋아하여 모두 1억1만3천 번(1억은 오늘날의 10만)이나 읽고, 이를 기념하여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불렀다는 대목에 이르면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읽은 횟수도 정말 놀랍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 헤아렸을까? 누구나 가질 법한 이와 같은 의문을 일찍이 다산 정약용도 가진 바가 있다. 물리적인 시간상 이렇게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산은 그의 독서 횟수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지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문자가 생긴 이래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김득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좌우간 그는 이 엄청난 독서를 통하여 일가를 이루었고, 다음과 같은 자부에 찬 말을 남길 수 있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해서 나는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 나보다 아둔한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나도 마침내 성공을 했다. 모든 것은 노력하는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최선을 다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김득신의 삶의 자세는 위의 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보다시피 그는 글자 한 자에 따라서 그 격(格)이 크게 달라지는 한시에서, 최선의 한 글자를 찾기 위하여 일생을 괴롭게 끙끙거렸던 것이다. '시 한 줄 잘 빚어놓고/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마침표를 지워버릴 것인지/ 오래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시가 문장부호 하나에/ 무거워할 때가 있다/ 시가 문장부호 하나에/ 가벼워질 때가 있다/ 그걸 아는 이가 시인이다.'(정일근 작 '시인') 김득신은 정일근이 말하는 시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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