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곳…즐길줄 알아야만 행복한 제주 생활
2011년 '잘나가는' 직장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와서 동쪽 구좌읍에 게스트하우스를 연 류기현(45'레프트핸드 주인) 씨. 제주의 속살인 오름이 좋아 아내와 딸과 같이 제주도에 정착한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무한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행복을 누리려면 넘치는 시간과 자유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뭍에 사는 이들의 로망인 제주도에서의 삶. 계절마다 다른 싱싱한 해산물에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을 즐기는 꿈을 꿈꾸고 있는 이들을 위해, 서울 남자의 '제주살이'를 들어봤다. 11월의 제주는 깊고 조용했다.
-스스로 '제주홀릭'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주에 산다는 것은 결국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줄 알면 된다. 이것이 진정한 '제주홀릭'이다.
-어떤 사람이 제주 정착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나.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그리고 시간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곳에 왔다가 심심하고 갑갑해서 1, 2년 살다 떠나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는가.
▶처음에는 직장동료가 승진하고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부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고 있다. 제주의 생활은 돈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곳이다.
-돈을 벌려고 오는 사람은 실패한다는 이야기인가.
▶제주도에 돈을 벌기 위해 오면 오래 견디지 못한다. 도시인들이 할 수 있는 숙박업, 커피숍, 식당 등 모든 게 포화상태다. 그냥 제주도가 좋아 살려고 와서 일을 찾은 사람들은 대개 행복해 한다. 일이 돈벌이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수단이 된 사람만이 행복한 제주생활을 누릴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연 이유도 수익 때문이 아닌가.
▶2011년 여기 왔을 때 이곳 구좌읍내 땅값이 평당 5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섯 배 이상 뛰었다. 2012년 4월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할 때만 해도 이 부근에서 유일했다. 지금은 10곳이 넘는다.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제주도에 오기 전에 서울에서 월 500만원을 벌었다. 지금은 수입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행복하다. 그것이 제주의 매력이다.
-땅값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느 정도 올랐나.
▶제주도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공항이 새로 생긴다는 소식에 인근 땅값이 엄청 올랐고 제주시내 한복판에 세워진 아파트는 3.3㎡당 3천만원에 이르고 있다. 해안에 가까운 땅은 1천만원(평당)을 호가하고 있으나 이것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정상적이지 않다.
-제주도민에게는 좋은 일이 아닌가.
▶불과 3년 전만 해도 300여 곳이던 게스트하우스가 지금은 2천여 곳에 이르고 있다. 과열이다. 멀리 보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제주도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공항을 새로 짓기보다는 오히려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는 것이 제주도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주민이 한 해에 1만 명에 이르고 있다.
▶포화상태인데도 매년 1만 명이 이주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성과'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확실히 지금이 '위기'다. 이주민의 정확한 실태조사와 함께 지원책이 필요할 때다.
-대부분 휴식을 위해 오는 사람들인가.
▶올레길이 인기를 얻으면서 나이 든 사람에게는 쉼의 장소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고 있다.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의 제주 정착도 한몫하고 있다.
-이주민의 연령이 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30, 40대가 많다.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30대들이 도시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고 제주도로 몰리고 있다. 심각하다. 사실 30대는 돈도 없고 경험도 없다. 소자본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몇 년 만에 빈손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는 어떻게 오게 됐나.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암에 걸렸다. 수술 후 제주도 올레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제주도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방학 때나 연휴 때면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가 아내를 치유한 셈이다. 아내는 '1년 살이'를 작정하고 휴직해서 제주도에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내가 제주도에 있으니 주말이나 휴가 때 와서 같이 올레길을 걸었다. 아내가 이 섬에 빠진 이유를 알게 됐다.
-결정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40대가 되니 지금의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끊임없이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아픈 아내를 보면서 행복과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에서 많이 본 게스트하우스를 해볼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준비했나.
▶집을 사지 않고 연세(年貰)로 얻어 올레길부터 구석구석 걸었다. 제주도에 살 수 있을지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2011년 9월에 와서 11월까지 올레길을 다니며 제주도를 살폈다. 오름이 정말 좋았다.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하기로 마음을 굳히면서 11월 말쯤 집을 알아봤다. 12월에 집을 사서 리모델링한 후 다음 해 4월 오픈했다.
-빨리 결정한 것 같다.
▶머릿속에 그린 집이 있었다. 시골집이고 바닷가가 멀지 않고 오름이 많은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마트나 편의시설 병원 등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이 지금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해녀박물관 근처 구좌읍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여유를 즐긴다는 것은 어려울 듯한데.
▶손님을 많이 받으면 하루 종일 일에 매달리게 된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제주도에 온 것이 아니다. 여유를 즐기고 자유를 누리며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서 왔다. 나는 돈보다는 시간과 여유를 택하기로 했다.
-독특하게 운영한다고 들었다.
▶오름투어를 특화했다. 제주도가 좋으니 오름이 좋았고, 오름이 좋아 세계지질공원해설사 자격증도 땄다. 게스트하우스에 오신 분들을 대상으로 월'수'금 오름투어를 하면서 제주도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밤에 바비큐 파티나 술 파티 등을 하지 않는다. 마을 안에 있기 때문에 이웃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제주도에서 생활한 지 3년이 지났다. 어려움이 있다면….
▶현지인들과의 스탠스다. 제주도에 이주한 지 3~5년이 된 사람들의 고민이 바로 거기에 있다. 동네 구성원이지만 현지인들과 접촉이 어렵다. 어르신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을회의가 있어도 참석하기 쉽지 않다. 10년쯤 살면 이런 자격이 주어질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고 제주 사람들과 열심히 어울리면서 형님 아우, 이렇게 깊이 사귀는 것도 쉽지 않다.
-이주민과 지역민이 서로 윈윈하며 성공한 마을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주에서 살면 살수록 사랑하는 제주도를 위해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진다. 올레길 지킴이 등 봉사활동도 하고 있지만 외지인이 가지고 있는 기획력과 현지인의 실행력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일을 하고 싶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성공한 마을도 꽤 있다.
-세화 벼룩시장은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제주도 방언으로 벼룩시장을 '벨롱장'이라고 한다.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이 모여 이 근처에서 물물교환으로 시작한 벼룩시장이 판이 커지면서 제주도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제주도에 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제주살이는 낭만이 아니고 현실이다. 집부터 덜컥 사지 말고 '한 달 살아보기' 혹은 '1년 살아보기'로 시작했으면 한다. 이 기간 동안 자신과 맞거나 이주할 자신감이 생기면 그 후에 정착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이곳만 해도 해가 떨어지면 깜깜하다. 이런 게 답답하거나 싫으면 제주도에서 살아낼 수 없다. 영화를 보려면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제주도에 대해 공부했으면 한다. 역사나 문화 그리고 자연환경 등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제주도가 더 좋아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제주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뭍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제주도에 대한 오해가 있나.
▶사람들은 제주도가 따뜻한 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겨울이 길고 추운 곳이다. 더욱이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난방비도 많이 든다. 또 아주 습하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는 습하기 때문에 관절에 안 좋을 수도 있다. 제주의 동서남북은 아주 다르다. 각각의 특성을 잘 살펴서 살 곳을 정해야 한다.
-자녀 교육에 어려움은 없는가.
▶아직도 고등학교 입시가 있는 곳이다. 교육열은 서울 못지않고 교육 여건도 좋은 편이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욕망 버리기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적게 벌어도 만족하며 살리라 마음먹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제주도에 얼마쯤 살 생각인가.
▶제주도에서 계속 살 것이다. 나는 지금도 제주와 사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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