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9선 의원의 마지막 등원, 잿빛 하늘도 하얀 눈물

입력 2015-11-27 01:00:09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서 부인 손명순 여사, 장남 은철 씨, 차남 현철 씨 등 유가족들이 슬픔을 달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서 부인 손명순 여사, 장남 은철 씨, 차남 현철 씨 등 유가족들이 슬픔을 달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서울대병원에서 떠나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운구차 앞에서 차남 현철 씨 등 유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서울대병원에서 떠나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운구차 앞에서 차남 현철 씨 등 유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눈발이 흩날렸다. 11월 서울의 첫눈이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 차량이 국회의사당 앞뜰로 들어오자 눈발은 더 거세졌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큰 획을 그은 9선 의원의 마지막 등원을 하늘도 슬퍼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YS를 "둘도 없는 동반자"라며 울먹였다. "22일 대통령님은 영영 저희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대통령님,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 그렇게 사랑하던 국민, 동지를 남겨놓고 이렇게 홀연히 가셨습니까"라고 말하는 그의 어깨에 눈이 쌓여갔다.

정치적 동지만 슬퍼한 것이 아니었다. 영결식장을 메운 사람들은 주로 50, 60대 시민들로 YS가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이들이었다. 정부는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에 시민들에게 담요와 핫팩을 나눠줬지만 거산(巨山)을 떠나보내는 텅 빈 마음마저 데울 순 없었다.

목수인 조원래(63'서울 동작구 상도동) 씨는 우비를 입고 서서 YS 사진이 걸린 국회의사당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YS 상도동 자택에서 버스로 조 씨의 집까지는 두 정거장, 이제는 버스를 타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는 영영 떠났다. 이날 하루 일을 접고 왔다는 조 씨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해서 검은돈 흐름을 끊고, 군사 쿠데타를 법으로 막은 분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을 봤다"며 "그 두 가지 때문에 나라가 크게 발전했고, 민주주의에도 큰일을 하셨다. 국민으로서 일 제쳐놓고 오는 게 당연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7년 전 한국에 정착했다는 중국 하얼빈 출신의 김영흥(54) 씨는 "나는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YS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는 우리나라에 살지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를 영결식에 초청해준 것이 너무 감사해 이곳에 왔다"며 마지막 메시지로 통합과 화합을 강조한 그를 애도했다.

YS를 역사로 배운 젊은이도 이곳을 찾았다. 1995년, YS 재임기간에 태어난 대학생 A(20) 씨는 "국사책에서만 봤지 솔직히 어떤 대통령인지 잘 몰랐고 서거 뒤 보도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가 이렇게 짧은지 몰랐다"면서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전직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영결식장에 들어오지 못한 시민들은 한걸음 떨어져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일반 시민도 국회에 들어올 수는 있으나 초청장이 있어야 영결식장에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중년 남성은 영결식 바리케이드 앞에 자전거를 세운 채 서서 묵념했고, 한 여성은 담요에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이날 영결식 경비는 삼엄했다. 장례위원인 현직 국회의원도 비표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어 입구에서 기다렸고, 소지품 검사도 철저히 했다. 초청은 받았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어 비표를 받지 못한 시민들은 "통제가 너무 심하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후 3시 30분, YS를 실은 영구차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끈 한국 정치의 거목이셨다"는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국회를 빠져나갔다. '큰 산'(巨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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