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있네'배우 박보영

입력 2015-11-26 01:00:05

"(문)근영 언니 이후 '국민 여동생'이 많잖아요. 언니가 독보적 이미지지만, 제게 살짝 왔다 갔죠. 연하킴(김연아) 선수도 있었고요. '국민~'이라는 게 붙은 뭔가를 얻는 건 영광이죠. 다들 이제는 부담 아니냐고 하는데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괜찮아요. 오히려 주위에서 더 난리고 걱정하시죠."

배우 박보영(25)은 최근 너무나 달라졌다. 귀엽고 애교 넘쳐 보였던 사랑스러운 '국민 여동생'이 음탕해지고(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욕을 맛깔스럽게 내뱉는다(영화 '피 끓는 청춘' '돌연변이'). 이제는 스포츠 신문사에 취직, 쥐꼬리만 한 월급을 주며 일하라고 강요하는 상사에게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한다.

그동안의 이미지에 불만이 있던 걸까. "사실 어렸을 때, 국민 여동생이나 귀엽다거나 하는 게 좀 불만이긴 했어요. '제가 이런 모습이 아니에요. 이렇게 봐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객이나 시청자분들이 그렇게 봐주시는 거잖아요. 받아들이기로 했죠. 좋게, 예쁘게 봐주시는 거니까요. 하하."

박보영이 악착같이 캐릭터를 변경하고자 한 건 아니었다. 다양한 작품,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올해 그 기회가 많았을 뿐이다. 그는 "예전부터 다작이 꿈이었는데 올해 이룬 것 같아 만족한다. 다음해에 또 이럴 수는 없을 것"이라며 좋아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안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아도 아직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거든요. '이게 안 되는구나. 그럼 다음에 다른 걸 해볼까'라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많은 것을 시도하려고 하죠. 올해가 감사한 게 시도할 만한 게 많았거든요. 언제까지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려고요."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취직만 하면 인생 풀릴 줄 알았던 수습 도라희(박보영)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상사 하재관(정재영)을 만나 겪게 되는 극한 분투를 그린 공감 코미디이다. "촬영 기간인 3개월 동안 열심히 욕을 먹었다"는 박보영과 "열심히 욕을 해댔다"는 정재영의 찰떡 호흡이 웃음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수습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부장 역의 정재영과 어리바리한 박보영의 맛깔스러운 연기가 조화롭다.

박보영은 "사실 정재영 선배가 영화와는 달리 평소에 무척 무섭고 진중한 분이 아닐까라고 혼자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며 즐거워했다. 정재영의 연기 스타일이 애드리브가 많은 편이라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지만, 영화에서는 웃음 포인트가 적절히 잘 표현됐다. 그는 "처음에는 정말 당황스러워 대사를 못 받아치는 게 있었다"며 "선배들과 같이 연기할 레벨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받기라도 잘하자'는 생각으로 훈련했다"고 웃었다. "어색하지 않다"는 게 듣고 싶은 칭찬이다.

그는 "선배들과 범접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걸 안다. 자연스러운 실생활 연기가 최고더라. 난 아직 '나 연기해요'라는 느낌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다"며 "선배들이 어떻게 연기하나 관찰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대사가 아닌 것처럼 할 수 있을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오달수, 배성우, 류현경, 류덕환 등등을 언급하며 "이 직업을 꿈꾸면서 봤던 선배들과 함께 연기하게 돼 설레고 좋았다"고 행복해했다.

전작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현장에서는 선배였는데, 이번에는 다시 막내였단다. 그는 "연기 10년 했는데 이번에 막내라 정말 좋았다"며 "계속 막내 하고 싶다"고 바랐다. "현장이 진짜 달라요. 어린 친구들과는 챙기고 다독이면서 가야 해서 힘들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안 그랬죠. 선배님들과 하면 가져가시는 부분이 많고, 서로 같이할 수 있는 부분도 많거든요. 가벼운 마음이죠. 물론 제가 이번에 무책임했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아무튼 막내라는 건 좋아요.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린 것 같아요.(웃음)"

처음으로 본인과 비슷한 나이대의 캐릭터('오 나의 귀신님' 전에 이 영화를 촬영했다.)를 연기하게 돼 좋아한 박보영. 수습기자(혹은 신입 직원)를 연기하니 자연스레 신인이었던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을 것 같다.

"라희는 그래도 할 말을 다 하는 편인데 전 할 말 못하고 끙끙댔어요. 이제 조금씩 하려 하죠. 예전에는 감독님 말이 다 맞겠지 했는데 나중에 스크린에서 보는 연기는 온전히 제 책임이고 제 몫이더라고요. 감독님이 시키는 걸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느낀 걸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서 '감독님 이렇게도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해요. 편집되어도 그래야 마음이 편해요. 예전보다 저 나름의 고집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하하."

이번 연기를 위해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도 받았다. 연예부 기자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 기자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진 않았다.

"이제 막 직장을 구했거나 벌써 3년 차가 된 친구도 있어요. 물론 아직도 구직 중인 친구도 있고요. 만나서 밥 먹으면서 욕을 엄청나게 한 기억이 나요. '그 회사가 널 왜 못 알아봤니?' '사회가 거지 같아' 등등 꽤 길게 얘기했어요. 친구들이 제 직업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저도 신기한 표정으로 많이 들었죠. 너구리같이 생긴 상사에게 '너구리'라는 별명을 붙여 욕하고, 연봉 협상과 관련한 이야기도 했죠. 돈을 놓고 협상한다고 해서 '와! 너 진짜 멋지다'고 했는데, '야, 내가 갑이냐? 그냥 형식적인 거야'라는 말을 들었어요."

박보영은 이번 영화를 통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깊이 새기게 됐다"고 한다. "답답하고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1, 2년 지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게 많잖아요. 당시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고요. 사실 저도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서툴러서 많이 혼났어요. 스킬도 없었고 융통성도 제로였죠. '집에 가라'는 말도 들어서 집에 가서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흘러갔죠. 친구들은 이제 이직을 고민한다고 하는데 저는 이직하기 쉬운 직업은 아니니 여전히 연기를 잘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항상 안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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