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체 끝에 달린 인류의 수명 시계…『빌 앤드루스의 텔로미어의 과학』

입력 2015-11-07 01:00:05

빌 앤드루스의 텔로미어의 과학

빌 앤드루스 지음/ 김수지 옮김/ 동아시아 펴냄

"노화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다. 치유할 수 있는 질병이다."

누구든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당연시하는 믿음이 일반적인 세상에서, 늙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치유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 빌 앤드루스 박사는 단호하다. 현대과학의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였던 노화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으며, 실제로 노화를 늦추거나 치유할 수 있는 방법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진실이 믿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100년 전으로 돌아가, 누군가가 매독, 위궤양, 농양, 렙토스피라증, 라임병, 클라미디아, 패혈성 인후염, 장티푸스, 괴저가 모두 근본적으로 동일한 질병이며, 약 하나로 이 질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해보자. 아마도 대부분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이며 사기꾼 같은 이야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탄생했다. 바로 페니실린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논리가 정확하게 노화에도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는 1995년 세계적 과학학술지 에 인간 텔로머라아제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관련 분야의 석학으로 떠올랐다. 특히 과학계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철학계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인 인간의 노화를 연구하고, 노화가 치유 가능한 질병이라고 주장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암과 같은 질병과 인간 노화의 비밀이 염색체 말단에 있는 텔로미어에 있으며 텔로미어의 길이를 길게 하는 텔로머라아제로 인해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텔로미어는 무엇일까? 우리의 유전자들은 세포핵 내부에 있는 염색체의 이중 나선 구조 DNA 분자들을 따라 배열되어 있다. 각 염색체의 끝 부분에는 텔로미어라고 하는 DNA가 우리의 유전 정보를 보호하고 세포가 분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는 짧아진다. 그리고 너무 짧아지면 더 이상 세포는 분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그 세포는 비활성화되거나 노화되거나 죽게 된다. 이렇게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과정은 노화, 암, 더 높은 사망 위험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생명과학 연구들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저자는 "노화는 기나긴 생물학적 전쟁에서 쓰고 남은 핵무기다. 노화는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생존 상의 이득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수백만 년 동안 생존하고 현재와 같은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준 도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식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고 (노화가 없다면 오히려 후손이 축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단점만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인류 생존의)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무기는 더 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노화를 치유하고 정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화에 대한 연구는 과학 한계뿐 아니라 종교적 철학적 편견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938년 유전학자 헤르만 뮐러가 텔로미어를 발견했지만,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아제 효소가 염색체를 보호한다는 발견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것은 70년이나 지난 2009년이다. 최근에야 겨우 텔로미어에 대한 연구, 즉 노화에 대한 연구가 주목을 받은 셈이다.

저자는 이 책의 후반부에 '노화를 치유하면 인구과잉이 일어나지 않을까?' '노화 연구가 부유한 자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자연법칙에 어긋나거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은 아닌가?' '불멸은 이기적인 목적 아닌가?' '독재자의 장수와 같이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문제를 도리어 만드는 것은 아닐까?' 등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며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160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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