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북출신 남자와 결혼하면 하루 65분 집안일 더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가 발표한 논문 얘기다. 그는 지난달 30일 어떤 학술회의에서 '남아선호가 강하게 나타난 지역에서 태어난 남성은 남아선호가 덜 강한 지역의 남성에 비해 전통적인 성 역할 태도를 지닐 확률이 높았으며, 이는 가사노동을 배분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많은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들은 이것을 소개하면서 이 논문에 제시된 우리 지역의 사례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1990년 출생성비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출생성비가 131인 경북에서 태어난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출생성비가 112인 인천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 비해 하루에 무려 65분을 더 가사노동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나간 다음 날 우리 지역이 발칵 뒤집힐 것으로 생각했다. 경북도지사는 긴급대책회의를 여느라 동분서주하고, 경북의 사례라고는 하지만 대구도 다를 바 없으니 대구시장도 사태 파악과 대책 수립에 땀을 흘릴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지역 언론들은 기획기사를 잇달아 내보내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계속 떠들어댈 거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이 보도는 '대형 재난'에 버금가는 충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 지역 사회는 너무 조용하다. 이 문제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이 문제는 심각한 걱정거리다. 우리 지역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하루에 한 시간 가사노동을 더 하는 셈이라는 얘기가 널리 퍼지면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이런 우리 지역 남성과 결혼을 하겠다는 여성이 과연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돌아다니던 우스갯소리가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졌다고도 볼 수 있다. "결혼시장에서 가장 큰 기피 대상은 ○○지역 출신 신랑이다. 그보다 더 큰 기피 대상은 ○○지역 출신 시어머니다." 이런 농담이 그저 우리 지역의 보수성에 대한 막연한 풍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교수팀의 연구는 그게 사실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혼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지역 젊은 남자애들은 취직도 어려워진다. 한 번 생각해 보라.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보수적인 젊은이를 좋아하겠는가 아니면 진취적인 젊은이를 더 선호하겠는가? 여성에게 하루에 한 시간이나 집안일을 더 시킨다는 낙인효과 때문에 우리 지역의 젊은이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 지역의 어떤 지표보다 더 심각한 위기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남아선호가 강하고, 여성의 가사노동이 다른 지역보다 더 길고, 가부장적 의식으로 여성을 무시하는 이런 이미지야말로 대구, 경북을 위기로 몰고 갈 요인이라고 본다. 그래서 저 논문의 분석이 대형 재난에 버금가는 큰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구경북이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사람들이 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모여들지 않겠는가? 우리 지역 젊은이들이 매력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고 그래서 장가도 잘 들고 취직도 잘하려면 대구경북은 여성을 존중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여성이 존중받으면 다른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존중받을 것이다. 그러면 대구경북 지역은 사람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대기업 유치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여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창조도시를 만들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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