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24시-현장기록 112] 일일이(112) 다가가는 진정한 경찰력을 위해

입력 2015-11-05 02:00:11

"여보세요, 경찰이죠? 여자친구가 손목을 그어 피가 흐르는 사진을 찍어 보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빨리 출동해서 여자친구를 구해 주세요!"

지난달 13일 밤 11시쯤 우리 경찰서 112 종합상황실에 접수된 신고 내용이다. 소중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112 종합상황실 및 무전을 청취하고 있던 순찰 경찰관들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고 신고자가 보내온 사진을 자세히 관찰한 후 참고할만한 단서에 따라 일대 원룸과 숙박업소를 샅샅이 뒤졌다. 또 신고자를 통해 자살 기도자의 인적 사항, 인상 착의, 주소지 등 참고할 수 있는 모든 단서에 대해 재차 확인하였다.

그 결과 신고자는 약 한 달 전 여자친구가 경산시 하양읍에 소재하는 카페에 취직하려고 수원에서 경산으로 이사하였으며, 그 외 여자친구의 정확한 주거지, 카페 이름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여자친구가 자살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한편, 자살 기도자의 모친은 자신의 딸은 절대 자살하거나 그와 유사한 일을 할 이유가 없는 아이이며, 어제도 분명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통화를 하였는데 왜 갑자기 자살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했다. 신고자의 명확하지 않은 진술, 이와 상반되는 모친의 진술, 그리고 무엇보다 자살 기도자에게 명백한 자살의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 분명 보통의 112신고와는 다른,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이 신고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고자가 보내온 여자친구가 손목을 그어 피가 흐른다는 사진 속의 혈액은 실제 혈액이 아닌 포도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칫하면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러한 의문은 뒤로하고 지역경찰과 형사기동대, 여청수사팀 등 경산경찰서 가용 인력이 전부 동원되어 주변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결국 반나절 만에 자살 기도자인 신고자의 여자친구를 발견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여자친구의 진술에 따르면 신고자는 자신의 전 남자친구로 헤어진 후 집착이 심해져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였고, 이를 피해 멀리 경산까지 도망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자신의 연락처가 무엇인지 절대 신고자에게 가르쳐 주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신고 내용과 달리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는데 안도를 하는 한편 극도의 긴장감이 해소되고 나니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 급박하게 받아들였던 신고는 남자친구가 예전 여자친구의 행방을 찾는 데 경찰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허위신고였던 셈이다. 이 탓에 그날 밤 경산경찰서의 업무는 거의 마비가 될 정도로 경찰력의 소모가 심했다.

전국 경찰이 일부 시민들의 허위신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허위'장난신고 건수는 2013년 7천504건에서 올해는 1천700여 건으로 감소세에 있으나, 처벌은 2013년 188명에서 올해 370여 명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실제로 현행법상 허위'장난신고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또 경범죄처벌법상 거짓신고죄로 6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구류'과료형을 받을 수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민사상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도 지게 된다.

"집 앞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워주세요" "택시를 탔는데 차비 좀 빌려주세요" 심지어 "지금 불이 크게 났어요! 빨리 출동해주세요! 어디냐 하면 내 마음에 불이 났어요!" 등 안 그래도 불필요한 신고가 많아 경찰력이 소모되고 있는 현실에서 허위'장난신고는 개인을 넘어 사회 혼란과 불안을 일으킨다. 범죄와 관련 없는 민원신고를 처리하기도 급급한 와중에 허위'장난신고까지 겹친다면, 정작 경찰 도움이 절실한 국민에게는 치안서비스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얼마 전 진행된 제7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찰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응답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국민의 안전과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며 "14만 경찰은 국민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고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뛰고 또 뛰겠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이 필요하다면 대한민국 경찰은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찰에게 무심코 한 허위'장난신고가 얼마나 큰 경찰력 손실을 일으키며, 그 결과 국민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대한민국 경찰에게 '일일이'(112) 다가가는 진정한 경찰력을 기대한다면, 이제는 국민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유념해봐야 할 때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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