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풀 대구·프라이드 경북·헬로 광주
"영어 표현해야 대우받는다" 착각 만연
한국사만큼 한국어도 관심 기울일 때
세계화는 이웃·지역 사랑하는데서 출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유달리 남을 의식하고 지나치게 겉치장에 신경 쓰고 사안과 관계없이 매사 1등, 선진국과 비교하거나 맹목적으로 그를 본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규모가 크고 좀 전통 있는 대학 중에는 연구교육 기반이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큰데도 불구하고 국제교류 실적 목록에는 으레 하버드를 위시해 세계 각국의 1위 대학이 장식처럼 들어 있게 마련이다.
평등 교육이니 인권 교육이니 구호는 요란한데, 서울의 일류 대학 준비반 학생은 특별 대우해 주고 심지어 그 특별한 교실에만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런 비정상적 명문고 육성을 당연시하거나 우수 학교라고 상까지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방화와 보편 복지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20여 년 전 당시 대통령이 세계화를 말하니, 뭐든 영어로 표현해야 우대하거나 대우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 만연하게 되었다. 'Hi, Seoul'(하이 서울)을 시작으로 해서 각 지자체마다 내건 구호나 표방하는 것도 그 형식은 대동소이하다. 유교의 전통과 새마을운동의 탄생지를 자랑하면서 '컬러풀 대구'며 '프라이드 경북'을 말한다. 대표적 예향이라고 하는 광주시 홈페이지의 민원창 명칭도 '헬로 광주'다. 찬란한 대구, 자랑스러운 경북, 안녕 광주는 왜 안 되는 것인지?
LG나 SK처럼 사기업은 그렇다 해도 ○○공사라고 하는 수많은 공기업도 무엇인지도 모를 영문 약자를 표방하는 것이 유행이다 보니 그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생수 회사로 오인하는 K-Water(수자원공사) 정도는 애교이다. 농협이 NH 뱅크로 표기하니 외국인이 이용할 확률이 극히 미미한 새마을금고까지 MG로 무장한다. '청실홍실'이나 '뜰안' 같은 정겹고 푸근한 그리고 누구나 알아 보고 알아 듣는 이런 아파트 이름은 어느 순간에 다 사라지고 전국 방방곡곡 분양하는 공동주택 이름은 죄다 외국어투성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니고 우스꽝스러운 합성 조어 아니면 원어민도 이해 못 할 이상한 표현이 많다.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고, 한국어만을 사용하자는 국수주의자나 민족 우월주의자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때 남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것, 대다수 이용자의 편리성을 위하는 것 이런 것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고, 공휴일로 지정하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진보건 보수건 다들 애국하는 방법을 찾겠다며 한국사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과 홍보전을 펼치며 똑같이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 역사 과목의 성격상 주관적이고 이념적인 것이 따르기에 이것으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끝이 없고, 해결책도 별로 안 생길 것이다. 그런데 한 공동체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공동체의 사고와 문화가 그대로 녹아 들어 있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체성의 상징 역할을 한다. 역사처럼 간극이 큰 논쟁의 소지도 아주 적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사에 대한 관심의 반의반만이라도 우리 공동체의 언어인 한국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문화국가가 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선진국이 아닌 동남아 등 신흥지역의 모범 정치, 모범 교육 사례도 찾아서 본을 받고, 후진국이나 피부가 희지 않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부당한 대우 같은 것도 부지불식간에 하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볼 때이다. 수많은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1위를 하고 있다. 태권도나 새마을운동에서 공용어가 한국어인 것은 그 분야에서 최고이기 때문이다. 토목이나 건축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구~광주 고속도로명을 달구벌과 빛고을의 첫 글자를 따서 달빛 고속도로로 추진한다고 한다. 그 멋진 아파트 건물명도 아무도 모르는 이름 대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우리말로 지어보자. 대학 못 가는 우리 청소년과 서울 못 가지만 인성이 훌륭한 우리의 아이들도 관심 갖고 돌보도록 하자. 옛말에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세계화, 글로벌화는 우리의 이웃과 우리가 사는 지역을 존중하고 우리 것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해야 제대로 된다.
※김우중: 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한국외국어대 졸업(스페인어 전공).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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