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떨고 있는 사람들

입력 2015-10-19 01:00:06

피라미드 금융 사기는 1925년 미국에서 이탈리아 출신 찰스 폰지가 선보인 이래 세계 각국에서 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이 중에는 나라 전체를 무정부 상태로 빠뜨리며 결국 내전까지 촉발한 최악의 사건도 있다. 바로 피해 규모가 1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30%에 이르렀던 1997년 알바니아 금융 사기 사건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됐던 알바니아는 1991년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했으나 극심한 인플레라는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금융사기 업체들은 이런 전환기의 혼란을 파고들었다. 인플레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국민에게 연 600%의 고율 배당을 약속했다. 이런 달콤한 소리에 알바니아 국민은 가진 것을 몽땅 팔아 금융 사기 회사에 몰아줬다. 거지도 깡통을 팔아 투자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 수는 200만 명으로 당시 알바니아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했다.

이렇게 투자가 과열한 데는 정부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살리 베리샤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이 투자를 적극 장려했던 것이다. 그 결과 피라미드 투자는 정부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사업으로 여겨졌다. 그 이후의 사태는 피라미드 사기의 필연적 행로를 그대로 재연했다. 1996년부터 금융 사기 회사가 파산하기 시작하면서 1997년 대파국이 왔다.

그 과정에서 베리샤 대통령과 집권당이 금융회사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피라미드 금융회사의 파산은 경영상의 실패가 아니라 집권 세력의 개입과 비호에 의한 조직적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분노한 알바니아 국민은 1997년 2월부터 대규모 시위에 나섰고, 이에 정부군이 공중 폭격 등 강압적 진압에 나서자 시위대도 무력으로 대응하면서 사태는 내전으로 확대됐다. 이 내전은 유럽 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에 따라 같은 해 6월 조기 총선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2천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피해액이 4조원대에 이르는 조희팔 사건은 공권력이 개입됐다는 점에서 알바니아 금융 사기 사건과 비슷하다. 궁금한 것은 연루된 공권력의 '층위'가 현재까지 드러난 대로 검사, 검찰수사관, 경찰 등에 그치고, 정치권 등 그 윗선은 무고한가 하는 점이다. 중국에서 체포된 조희팔의 최측근인 강태용의 국내 송환을 앞두고 대구지역 경찰관 30명 이상이 떨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떨고 있는 사람이 과연 경찰관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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