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을 일으켜 문벌 귀족 중심의 정치체제를 뒤엎은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실세들은 '방'(房)의 정치를 즐겼다. '중방' '도방' '정방' 등의 권력기관은 국가의 공식기구이기보다는 독재자의 권력 유지를 위한 비밀스러운 성격을 지녔다. 특히 청년 장군 경대승이 설치한 '도방'은 사병 집단에 가까웠고, 최씨 정권 2대 권력자인 최우가 만든 '정방' 또한 사설 인사행정기관에 다름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안방의 내밀한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국 근'현대사의 막후에서는 무리를 뜻하는 '방'(幇)자를 사용한 단체와 파벌이 큰 힘을 발휘했다. 1920, 30년대를 풍미한 '칭방'(靑幇)은 청나라 조정에 양곡을 운반하던 노동자들의 자위 조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침략기 상하이(上海)에 거점을 둔 암흑가의 막강 조직으로 군림하면서 국민당 정권과도 결탁이 되어 정치적인 테러와 국공내전에도 깊이 관여했다.
'방'의 실세를 아낌없이 발휘한 무리는 '4인방'(四人幇)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을 비롯한 4명의 공산당 간부가 그들이다. 4인방은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마오(毛) 주석의 사망과 더불어 숙청되었다. 그렇게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리고, 덩샤오핑(鄧小平) 일파가 실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방'의 여력은 1990년대까지 이어진다. '상하이방'(上海幇)은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 권력층의 실세로 진출한 상하이 출신 인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상하이를 정치적 기반으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장쩌민(江澤民)의 후원에 따른 것이다. '상하이방' 또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정치'외교를 좌우한 최대의 지역 인맥이었지만, 정권 교체와 함께 부정부패 혐의로 비판과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방'이란 글자는 이처럼 공개보다는 비밀, 공익보다는 사익에 경도된 이미지와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속칭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잊을만하면 구설에 오르곤 한다. 권력 심층부의 속성이 그런지는 몰라도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얘기가 더 많았던 게 사실이다.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지역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자고로 비선 조직의 실세는 그 지략에 비례하여 나라와 주군에게 상처를 입히고 스스로도 파멸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선량한 인품과 반듯한 직무 철학이 절실한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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