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퇼'과 '토오이일'

입력 2015-09-18 01:00:05

대구도시철도 2호선 계명대역에 가면 벽면에 재미있는 글이 있다. 어느 문화패의 작업으로 보이는 이 낙서형 글의 내용은 '내 코가 250만원' '야 임마 오랜만이다. 커피 값은 네가 낼께'등으로 대학 근처의 지하철역답게 학생들 사이 대화에서 있을 법한 우스개에 가까운 것들이다. 이것들은 영남대 방향의 개찰구로 들어가기 전까지 벽면 군데군데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늘 하나가 눈길을 끌어 오갈 때마다 되새겨보곤 한다. 아무리 봐도 생각이 기발해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한 것이다. 개찰구로 가기 전 에스컬레이터 옆 벽면에 적힌 '워얼화아수우모옥금퇼'이라는 글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천천히 지나가다가 금요일은 보통, 토'일은 그야말로 총알같이 지나가는 것을 풍자했다.

우리 말에서는 쓰이지 않는 '퇼'이라는 글자에 이르면 아마 이 역을 자주 드나드는 학생뿐 아니라 대부분 샐러리맨이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쓴 것이 아니고 그림도 아니어서 이것도 그라피티(graffiti)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벽면에 쓰인 글이나 그림이 난삽하지 않으면서 재미를 줘 잠시나마 피곤을 잊게 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라피티는 1940, 50년대에 하나의 예술 형태로 자리 잡았다. 장난스럽게 서명까지 남기는 형태의 현대적 그라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작해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보편화 됐다. 이것이 주로 하층 흑인문화인 힙합과 결합하면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퍼지면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구 대도시 지하철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낙서 비슷한 그림'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라피티가 성행하지 않고, 정해진 곳이 아니면 공공장소에서의 그라피티는 금지한다. 그래서 수많은 외국 그라피티 작업자들에게 우리나라는 신규 개척지로 각광 받는다고 한다. 지난 5월, 대구와 인천의 지하철 차량 외벽에 외국인의 소행으로 보이는 대형 그라피티가 발견돼 범인 색출 소동을 벌였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퇼'이라는 표현대로라면 오늘은 그나마 평상처럼 흘러가는 금요일이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정말 '퇼'처럼 지나갔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다. '퇼'이 될지, 토일이 될지 '토오이일'이 될지는 금요일인 오늘을 어떻게 시작해 잘 마무리할 것인지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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