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t 규모 탱크 유량계 파손…업체 직접 해결하려다 늑장 신고
'안전 불감증'과 '인재'(人災)라는 악몽이 재현됐다. 영천의 한 실리콘 제조업체에서 2일 불산이 누출됐지만 업체 측은 늑장 신고를 했고, 유해물질 관리업무를 총괄하는 환경청은 물론, 영천시도 이 업체가 화학물질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다. 3년 전 구미 불산 사고에서 드러났듯 유독 화학물질 누출 사고 발생 때 일선 재난 대응에 구멍이 또다시 뚫릴 것이라는 우려(본지 2일 자 1'3면 보도)가 고스란히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사고 발생
2일 오전 10시쯤 영천시 금호읍 실리콘 제조업체인 SRNT 공장에서 불산과 질산 등이 섞인 화학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공장 안에 있는 10t 규모의 탱크 유량계 밸브가 파손되며 일어났다.
탱크 안에 있던 실리콘 세정제로 쓰이는 불산 5%와 질산 60%, 물 35%가 섞인 화학물질 4t이 새어 나왔고, 이 가운데 0.5t은 하수도에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업체 측은 사고가 난 지 2시간 30분이 지난 낮 12시 32분에야 소방서에 신고했다. 경북소방본부 특수구조단 및 화학구조센터는 모래로 유출부를 덮은 뒤 소석회를 활용해 오후 4시까지 중화작업을 벌였다.
영천시는 공장 근로자와 사고 현장 인근 300m 내에 있는 원기리와 삼호1리 주민 200여 명에게 대피령을 내렸고 주민들은 금호실내체육관으로 몸을 피했다. 영천시는 오염도를 측정한 뒤 주민 복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대응 엉망
이번 사고는 허술한 화학물질 누출 사고 대응 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노란색 연기가 공장 밖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한 건 신고가 접수되기 2시간 30분 전이었다.
그러나 공장 관계자들은 화학물질 누출을 직접 막겠다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업체 관계자는 "처음엔 방류벽에 갇혀 있어서 자체적으로 조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누출 사고에서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또다시 간과한 것이다.
늑장 신고 탓에 영천시와 소방당국은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공장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3시간 동안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된 셈이다. 주민 30여 명은 두통 등의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청이 사고 공장에서 측정한 결과, 불화수소 30ppm, 질소산화물 52ppm이 나왔다. 질소산화물은 측정기기의 최고 한도를 넘어설 만큼 상당히 많은 양이라고 환경청은 밝혔다. 사고지점 인근 주택가에서는 일단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당국의 화학물질 감시망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지난 3월 영업 허가를 받은 이곳은 연간 화학물질 처리량이 120t 미만인 소규모 화학물질 취급업체로 신고 의무가 없다. 소규모 업체는 화학물질 사용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셈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이런 종류의 누출 사고가 나면 모든 대응은 환경청이 하기 때문에 지자체는 현장에서 2, 3차 오염을 막거나 현장 주변을 통제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구환경청 관계자는 "신고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이 업체가 화학물질 취급 대상인지 몰랐다"면서 "다행히 사고 지점 인근 주택가에서는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영천에서는 불과 두 달 전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7월 17일 영천시 도남동 한 공장에서 저장탱크에 균열이 생기며 저장돼 있던 황산제2철 수용액 28t(업체 추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중 일부는 농수로로 흘러들어 소하천으로 유입됐다. 이날 사고 원인도 시설 관리 부실에 따른 탱크 부식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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