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암살, 자기 배반의 기록

입력 2015-08-08 01:00:00

1969년 서울 출생. 서울고등음악원. 대구MBC라디오
1969년 서울 출생. 서울고등음악원. 대구MBC라디오 '권오성의 귀를 기울이면' 진행

케이퍼 필름(Caper Film)은 최동훈 감독의 전매특허다. 범죄 영화의 하위 개념으로 도둑을 테마로 하는 케이퍼 필름은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며 성공한 후 도주하는 내용을 담는다. 자칫 뻔한 전개가 진부해질 수 있지만 감독의 역량에 따라 기막힌 반전과 재미가 더해진다. 최동훈 감독의 대표작 '범죄의 재구성', '타짜', '도둑들'이 그런 경우다.

아예 자신의 영화사 이름까지 '케이퍼 필름'으로 한 최동훈 감독의 최근 개봉작은 '암살'이다. 암살은 케이퍼 필름 요소를 적절히 배치시키며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80억원을 들여 지은 세트도 볼 만하다. 여기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배우들의 면면은 못해도 평균은 하겠다는 기대를 할 만하다.

사실 암살은 최동훈 감독의 전작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컨텍스트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기분이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기법까지 동원한 편집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섞어야 하는 감독의 부담이 느껴진다. 암살은 그런 영화다. 감독의 고민을 읽어야 할 만큼 영화로만 보기 힘들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고 알지 못했던 역사도 담겨 있다. 여기에 있었을법한 픽션이 더해지니 영화 어법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사라진다.

영화의 배경인 1933년은 일제가 괴뢰 만주국을 수립(1932년 3월 1일)하고 아시아 패권의 야욕을 본격화한 때다. 또한 1932년 국제 연맹의 리튼 조사단이 만주국을 일본의 괴뢰 정부로 규정하면서 일본이 국제 연맹을 탈퇴한 해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김원봉은 중국 항저우로 근거를 옮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는다. 김구와 만나 조선주둔군 사령관과 친일 부호 암살 계획을 세운다. 암살단은 간도 참변과 신흥무관학교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망국의 실체를 아버지로 둔 살인청부업자까지 우여곡절 끝에 가세한다. 짐작 가능한 가족사처럼 메타포를 느슨하게 숨겨 놓아 최동훈표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까지 배려한다.

관객은 실재했던 친일 부호 몇 사람을 어렵지 않게 연상하며 강인국(이경영 분)의 야심과 비정함에 분노한다. 독립군에서 밀정으로 옷을 갈아입은 염석진(이정재 분)에게서 공포감마저 느낀다. 현재 명동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었던 미츠코시백화점 전투 장면 같은 볼거리도 관객들을 감동케 한다. 그리고 비극적 결말과 단죄가 교차된다.

강인국과 염석진의 단죄는 씁쓸하다. 관객이 바라는 바이며 감독 또한 스크린에서나마 단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장 밖에서는 여전히 강인국과 염석진이 활개친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재판 장면은 자기 배신의 역사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합리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염석진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장이 팽개친 재판봉은 해방은 되었지만 주체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염석진과 강인국을 살려야 했다. 아니면 염석진이라도 살려야 했다. 역사에서 둘은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김구는 남한에서 암살당했다. 김원봉은 친일 형사에서 반공 형사로 명패를 바꾼 자에게 수모를 겪다 월북하고 북한에서 숙청당했다. 김원봉의 이복형제들은 한국전쟁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했다. 영화에서 염석진은 "내가 해방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느냐"라며 절규한다. 안옥윤(전지현 분)은 "그 명령, 82년 만에 집행합니다"라며 단죄한다. 해방될 줄 몰랐던 변절은 역사로 남아있고 82년 만에 집행한 단죄는 픽션으로 그려진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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