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도시에서 벌어지는 진기한 풍경이 하나 있다. 대형마트 입점을 둘러싼 '싸움질'이 바로 그것이다. 싸우는 과정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획일적이다. 처음에는 '허가해 줘야 한다'는 찬성파와 '막아야 한다'는 반대파가 자신의 논리를 들이대며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지역상권'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하는 명분을 앞세우면 '찬성파'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디든 대형마트, 시행사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초기엔 반대파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 우세한 싸움을 벌이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수세에 몰린 찬성파는 반대파를 위한 수많은 약속을 남발하고, 반대파는 '이왕 허가가 날 바에는 실리를 챙기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것저것 얻어먹기 시작한다. 찬성파의 압승으로 끝이 나고 수없이 남발했던 상생(相生) 약속도 증발되고 만다. 대형마트의 배신행위에 격분하는 이들도 있지만, '생쌀이 밥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따질 데도 없다. 자본과 힘있는 자들이 승리하는 방식은 어디서든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허가권을 쥔 자치단체장의 행동방식이다. 상당수 단체장의 경우 속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주민들의 뜻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 마련이다. 대부분 대형마트와 시행사가 하는 대로 내버려뒀다가 반대파가 좀 잠잠해지면 '현행 법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논리로 허가를 내주고 만다.
1997년 대구의 대형마트 1호점인 홈플러스 대구점이 생길 때였다.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었지만, 당시 대구시장은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 논리를 들며 허가를 내줬다. 요즘에는 누구나 자본의 역외 유출, 일용직 양산 등 대형마트의 폐해를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경제전문가를 자임한 대구시장의 논리를 압도할 만한 이는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허황한, 터무니없는 논리에 시민들이 넘어간 셈이다. 그때를 시작으로 대형마트들이 야금야금 들어오기 시작해 현재 대구에만 19개가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대구시 북구 칠성동 롯데마트도 마찬가지다. 2013년 북구청이 대구시의 도심 입점 제한 방침을 어기고 파격적으로 허가를 내줬다. 그런데 당시 구청장의 동생이 대형마트를 짓던 시행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당시의 구청장이 어떤 마음을 먹고 허가를 내줬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포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호동 롯데마트 입점 논란도 점입가경이다. 당초 포항시는 특급호텔을 확보하기 위해 부대시설로 판매시설을 승인해줬는데, 시행사가 약속을 어기고 판매시설 중심의 건물을 완공했다. 건축 허가 과정에 포항시의 잘못도 있었지만, 포항시가 대형마트 입점을 불허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행정소송에서도 포항시가 이겼다. 그런데 요즘 찬성파가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하자, 포항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모양이다. 포항시장의 의지가 어떠한지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솔직히 단체장이 굳건하게 자신의 입장을 견지한다면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어렵다. 한국만큼 공무원의 권한이 막강한 곳도 없다. 공무원의 '전매특허'인 서류 반려, 시간 끌기, 트집 잡기, 보완책 마련 등을 끊임없이 요구한다면 이를 견뎌내고 대형마트를 세우려는 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입점을 막다가도 나중에 로비, 압력 등에 녹아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단체장의 의지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단체장과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전매특허'를 힘없는 서민들에게 사용하지 말고, 거대자본과 힘있는 자에게 썼으면 좋겠다. 서민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관(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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