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한달…이것만은 고치자] <하> 허술한 감염병 대응 체계

입력 2015-06-24 05:00:00

정부, 정보 독점 '불통'…지자체, 바이러스 정보 쫓기 '분통'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국내 감염병 대응 체계를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엉성한 대응 체계를 재정립하고, 방역 시스템의 무게중심을 광역자치단체와 일선 보건현장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 통화조차 어려웠다

경상북도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들어온 건 지난달 29일이다. 방역 당국은 메르스 환자 급증으로 음압격리실이 부족한 상태가 되자 경기도 평택의 확진 환자 2명을 국가지정격리병상이 있는 동국대 경주병원으로 보냈다. 이송 작전은 이날 새벽, 어둠을 틈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는 경북도나 경주시에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당시 환자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다른 한 명은 메르스 감염 의심자로 격리된 상태였다.

졸지에 확진 및 의심 환자 등 2명을 받은 경북도에는 비상이 걸렸다. 환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질병관리본부에 환자에 대한 정보를 문의하려 했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전화기는 하루종일 '통화 중'이었다. 보건복지부 전화도 늘 '통화 중'이었다.

결국 경북도는 닷새가 지난 뒤에야 이들이 모두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경북도 관계자는 "정부가 각 시'도를 배제하고 병원과 직접 연락을 하다 보니 지자체는 들러리만 서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메르스가 창궐해도 지자체는 구경만 해야 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지난 12일 경북의 첫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Y씨 경우에도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북도 보건환경연구원은 Y씨의 유전자 검사를 해 두 차례에 걸쳐 양성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양성 판정 결과가 정부의 공식 집계에 잡히기까진 하루가 더 걸렸다. 경북도 보건환경연구원의 검사 결과에 대해 처음에는 "알아서 하라"던 질병관리본부가 뒤늦게 확인 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경북도가 예방의학 분야 교수와 감염내과 전문의 등 민간전문가를 활용한 역학조사팀을 꾸리고 Y씨의 이동 동선을 대부분 밝혀냈지만, 중앙정부는 다시 메르스 역학조사팀 4명을 경북도에 파견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헛심을 쓴 셈이다.

대구시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 3일 대구의료원 음압격리실에 수도권의 메르스 의심환자가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대구시는 정확한 이송 정보를 받지 못했다. 첫 확진 환자인 K씨가 중앙메르스대책본부의 최종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도 대구시는 인맥을 동원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대구 의료계 한 관계자는 "모든 정보를 정부가 독점하고, 각 지자체는 하루종일 불통인 전화만 돌리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IT강국이라는데 다른 온라인 소통 수단이라도 마련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자체 중심의 방역 네트워크 짜야

일선 현장에는 역학 전문가는커녕 의료적 지식을 갖춘 임상병리사나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보건 관련 담당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광역자치단체의 전문 역량이 떨어지다 보니 각 지역 보건소와 질병관리본부가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많고, 지자체는 문서가 오가는 통로 역할에 그쳤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도 관련이 있다. 보건 역량을 키울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구시 올해 보건복지 분야 전체 예산 1조2천912억원 가운데 보건 관련 예산은 10.8%인 1천398억원에 그친다. 이 중에서 감염병 관리체계 예산은 203억원이지만 예방접종과 결핵 등을 제외한 신종감염병 관련 예산은 1억8천만원에 불과하다.

경북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보건정책 관련 예산은 970억원이지만 신종감염병 관련 예산은 모의훈련 예산 1천만원밖에 없고, 방역 관련 전체 예산도 23개 시'군을 다 합쳐 8억원이 전부다.

경북도는 각 보건소별로 간호사나 임상병리사를 1, 2명 이상 더 충원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감염병 컨트롤타워를 해야 할 도청 공무원이 보건 현장 경험이 적다 보니 감염병 확산 상황에 대처가 쉽지 않았다"면서 "치료 위주로 돼 있는 보건 정책을 예방과 대응 시스템 구축 분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감염병관리센터와 민간 자문단 등 평시에는 역량 강화 교육을 진행하고, 실제 상황에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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