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와 살인자의 여자 삼각 멜로, 기대 되시죠?
배우 전도연(42)은 김남길과의 호흡이 마뜩잖았다. 초반에는 의심했을 정도다. 김남길에게서 풍기는 '나쁜 남자' 모습이 영화 '무뢰한'의 형사 정재곤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만나본 그가 예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김남길은 현장에서 지나치게 장난꾸러기였다. 전도연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남길은 애교가 많은데, 과하게 많아 힘들었다"고 할 정도다. '이 남자가 과연 재곤을 잘 연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했으나, 막상 촬영이 들어가고 연기를 하니 달랐다. 만족스러웠다.
"재곤 역할이 김남길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상남자 같은 남자 재곤이 아이 또는 소년 같은 모습으로, 보호 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모습 등으로 입체적이고 다양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런 다양한 매력에 영향을 받아서 제가 맡은 혜경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해요.(웃음)"
영화 '무뢰한'은 진심을 숨긴 형사 재곤과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 혜경, 두 남녀의 피할 수 없는 감정을 그린 하드보일드 멜로다. 복잡한 수식어가 있지만, 어찌 됐든 멜로 이야기다. 남녀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영화 속 두 사람은 서로 보듬을 듯하지만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 답을 알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전도연은 "둘의 마음은 분명한 사랑이라고 느꼈다"고 단언했다. 두 사람이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전도연은 정재곤에 대해 "무척 바보 같다. 모자란 남자 같았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영화적으로는 만족한다. 관객들이 여러 지점을 느끼고 만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무뢰한'은 묵혀 있던 시나리오가 재탄생된 영화이기도 하고, 제작 지연도 잇따랐다. 배우 이정재가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됐으나 다른 영화 촬영 중 다쳐 하차했다. 전도연도 스케줄 탓 미루고 미루다 확정을 했는데, 이정재가 하차하게 됐으니 고스란히 또 기다림이 이어져야 했다.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혜경 캐릭터도 주목도가 높지 않다. 김혜경은 건조한 여자로 그려져 있었다. 여자의 감정과 스타일에 대해 전도연이 의견을 말했고, 감독과 협의해 혜경은 살아 숨 쉬게 됐다. 남자 영화로만 보일 수 있는 '무뢰한'이 균형을 맞추게 됐다.
"이 영화는 하드보일드 안에 녹아있는 멜로 장르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극 중 김혜경은 사랑이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희망이 없는 여자로 보였어요. 하지만 전 꿈을 가지고 사는 김혜경을 표현하고 싶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이런 힘겨운 삶 속에도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죠.(웃음)"
전도연은 "캐릭터를 입체화시키고, 또 이해를 시키고 싶은 욕심들이 있었다"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감독과 공유한 이유를 밝혔다. 또 "혜경이 사람들과 어떻게 부딪히고 살아남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시나리오 초고를 비교해 보지 않아도 전도연이 욕심내 입체화시킨 캐릭터가 스크린 속에서 잘 살아났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극 중 혜경은 이용당하는 인상이 강하다. 전도연은 혜경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김혜경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냉정하고 아픔을 못 느낄 것 같은 차가운 여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시나리오를 읽으며 알았죠. 만약에 누군가의 사랑을 믿지 않고 이용만 당한다고 했으면 김혜경 같은 행동들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김혜경은 겉모습과 다르게 누군가에게 안주하고 싶은 여린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혼자서도 살 수 있지만 사랑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여자라고 생각했죠."
전도연의 패션 감각도 혜경을 연기하는 데 한몫했다. 본인의 의상을 그대로 사용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상 중 일부가 김혜경을 더 김혜경답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혜경이라는 인물은 외형적으로도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의상이 생각보다 많은 걸 표현할 수 있거든요. 특히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지만, 결코 구질구질한 여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죠. 사비를 들여 산 옷도 있다니까요(웃음). 스타일리스트와 상의해서 극 중 인물과 어울리는 의상을 골라냈어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으니 전도연의 칸 방문은 벌써 4번째. 하지만 이번에도 칸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방문했을 때, 라면만 먹으며 심사를 해야 해 "호텔에 돌아와 이렇게 사람을 부려 먹어도 되냐"며 울었단다. 올해도 바쁘긴 했다. 통틀어 잠은 4, 5시간밖에 못 잤고, 룸서비스와 매니저가 한국에서 가져온 밥을 먹어야 했다. 다행히 "한국 기자들과 칸 해변에서 인터뷰해, 모래사장을 한 번 밟아봤다"고 즐거워했다.
전도연은 "신인감독들의 재기 발랄한 작품이 요즘 많다"며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호감을 표했다. 하지만 아직 전도연을 만족하게 할 시나리오를 들고 도전한 감독은 없었나 보다. "아무래도 그분들한테는 제가 선배이기도 하고, '칸도 다녀왔으니 작품성 있는 영화만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전혀 그런 거 아닌데 말이죠. 사람들이 저를 깐깐하고 무섭게 보기도 해요. 하지만 김남길이나 공유 같은 배우들은 내 캐릭터가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김남길 같은 경우는 자기와 '코미디 꼭 하자'고 하던데요?(웃음)"
신인 감독들과 작업하고 싶다고 했는데, 영화 '무뢰한'의 개봉 전 공식 홍보 자리에서 오승욱 감독이 "전도연에게 혼이 많이 났다"고 공개해 오해를 사게 했다. 15년 만에 다시 영화계에 돌아온 감독을 혼냈다니, 충분히 오해할 만한 발언이었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매번 '이게 내 인생 마지막 촬영이다'라고, '또 언제 내가 영화 찍을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혼났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마음 아팠어요. 이번에 칸 초청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독님께 '다음 영화 찍을 수 있겠어요!'라고 축하 연락을 드렸죠."
진현철/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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