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급식으로 앞서가는 경북] <10·끝> 풀어야 할 숙제는

입력 2015-05-28 05:00:00

농촌 농산물, 대도시 급식센터와 계약…시골분교는 급식 못받는 '불편한 진실'

경상북도가 시행하고 있는 친환경 학교급식이 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 농민 등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내 고장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을 매일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지역마다 급식지원센터에서 농가로부터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공수해 학교급식의 식재료로 공급하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은 채소는 무농약, 과수는 유기농 이상 인증을 받은 것이어서 식재료로는 최상품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대도시 학교와는 달리 시골 학교에서는 여전히 친환경 급식은 먼 나라 얘기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은 대부분 대규모로 계약된 대도시 급식지원센터로 전량 공급되기 때문에 농'어촌으로 따로 오는 물량은 없다. 또한 일부 지역은 친환경 농산물을 수집하는 급식지원센터조차 없는 형편이다.

특히 급식지원센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학생 10명 미만의 분교에 소량의 식재료를 공급하려고 1시간 이상 배송해야 하는 탓에 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할 사업체와 배송업체 등이 "이윤이 남지 않는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배달에만 1시간, 오지 배송'유류비 지원 절실

봉화 학교급식의 식재료 공급을 담당할 봉화군농업회의소영농조합법인은 요즘 고민이 많다. 다음 달 급식지원센터가 준공되고 오는 10월부터 봉화농업회의소가 지원센터를 맡아 식재료 공급 업무를 하기 때문. 지역 교통환경이 워낙 좋지 않아 학교까지 식재료를 운반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봉화농업회의소는 사전 조사를 통해 직접 식재료를 학교까지 공급하면 큰 손해가 있다고 판단해 지역 식재료 공급업체에 운송 부문만 위탁하기로 했다. 그러나 봉화는 몇 개 읍'면에 겨우 식재료 공급업체가 하나 정도 있을 뿐이고, 이들 업체도 시간 대비 이윤이 적은 급식 식재료 납품에 큰 호응이 없었다. 봉화농업회의소는 이들 업체를 만나 수개월 동안 설득한 끝에 급식을 조리하는 21개 학교를 총 4개 코스로 나눠 3개 코스에 대한 운송 부문을 위탁하기로 했고, 1개 코스만 직접 배송하기로 했다.

임동규(32) 봉화농업회의소 사무장은 "최근에 겨우 운송 부문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지역이 워낙 넓고 교통사정이 안 좋은 데다 운송거리가 멀어 식재료 공급에 문제가 많다"면서 "지금도 수익을 바라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손해를 막대하게 보면서까지 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기엔 힘들다.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봉화군급식지원센터에서 급식 식재료를 공급하는 학교 중 가장 먼 학교는 석포초등학교다. 급식지원센터에서 석포초교까지 거리가 52㎞ 정도 떨어져 있어, 중간 경유 없이 단독으로 배송 후 센터까지 귀환하는 데만 3시간가량 걸린다.

임 사무장은 "대도시는 도로 사정이 좋고 많은 배송업체가 있어서 경쟁이 되지만 시골은 배송업체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면서 "배송이 시작되고 수익이 안 난다며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가 잇따를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친환경 급식 자체가 대도시에 맞춰진 제도 같아서 아쉬운 점이 많다. 시골의 여건을 고려해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대도시 학교와 시골 학교 모두 공평하게 친환경 급식을 맛보게 해야 한다"고 했다.

◆친환경 재료 없어서 못 쓴다.

22일 오전 8시 30분쯤 봉화군 물야면 물야초등학교 급식소에 식재료 공급차가 도착했다. 영양교사와 조리사 등은 식재료를 확인하며 분주하게 저울에 식재료의 무게를 쟀다. 이들은 식재료 검수를 끝낸 다음 양파 3㎏짜리 한 망에서 몇 개를 덜어낸 다음 따로 포장을 했다. 어묵도 역시 300g을 덜어냈고, 오이지 등도 일부를 덜어낸 다음 조리실로 재료를 옮겼다.

김선미(46) 물야초등학교 영양교사는 "물야초교는 본교로서 2개의 분교를 담당한다. 수시분교는 본교에서 음식을 조리해 운반해주며, 북지분교는 단독조리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일부를 덜어서 그 분교의 인원에 맞게 식재료를 맞춰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급식 식재료는 양념류를 제외하고는 당일 재료를 받아서 조리하기 때문에 이 학교는 매일 아침 식재료 검수와 분교로 나갈 재료 등을 덜어내는 일 때문에 다른 학교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오는 10월부터는 급식지원센터에서 일괄적으로 식재료를 납품한다. 그런데 다른 학교와 달리 이 학교의 이런 사정을 시간이 금이라고 생각하는 배송업체가 이해해줄지 걱정이라고 했다.

봉화 물야초교는 올해부터 친환경 급식을 시작했지만 백미와 잡곡이 유일한 친환경 식재료다. 다른 식재료는 여전히 일반 농산물을 사용하고 있다. 봉화뿐 아니라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 소재 학교는 사정이 비슷하다.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면 경북도가 재료 구입비의 일부를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지원비를 쓰고 싶어도 친환경 식재료가 없어서 못 쓰는 실정이다. 친환경 농산물 대부분은 군 단위 농촌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지만 이들 농가가 대규모로 농산물을 취급하는 대도시 급식지원센터를 선호하다 보니 소량이 필요한 지역에는 계약조차 꺼리는 탓이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인데도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얘기다.

김 교사는 "대도시에서 이미 시작된 친환경 급식이 시골 학교에는 겨우 내년이나 돼야 시작될 여건이 마련된다"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은 의무적으로 지역 학교에 공급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등 지역 학생들에게도 좋은 먹을거리가 공급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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