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서로 소식 없이 지내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여고를 졸업하고 친구는 서울로 진학하고 나는 대구의 한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서로 소식이 뜸해졌다. 꿈 많던 여고 시절, 서로 고민을 털어놓던 소중한 친구였던지라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마음뿐이었다. 그러다가 올봄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꽃은 낙화를 슬퍼하지 않는다'란 매일춘추에 실린 나의 글을 보고 혹시 자신이 찾는 친구가 아닌지 연락해온 것이었다. 둘은 반가운 마음에 당장 만났다.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만나는 데 30여 년이나 걸린 것을 야속해하면서.
우리는 차 마시는 것도 잊고 지난날을 더듬어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때 친구 부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잉꼬부부였다. 그러나 그 남다른 정을 하늘이 시샘이라도 하듯 남편에게 암이 찾아와 오랜 투병생활 끝에 사별해야만 했단다. 눈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어 하던 남편의 이야기며, 아들 하나를 홀로 키우면서 어렵게 살아온 사연은 차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친구는 전공과는 관계없는 온갖 일을 다 하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아들의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남편이 떠날 때 '아들은 의학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 때문에 지금 4수를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에게는 자식이 곧 자신의 일부이자 먼저 떠나보낸 남편의 자리를 메워 줄 유일한 존재였다. 아들이 곧 그녀의 삶이었다. 그 아들이 있어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밥도 삼킬 수 있었고, 생활전선에 나가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고민은 세상 많은 부모들이 겪는 일일 것이다. 많고 많은 직업 가운데 내 아들에게 시키고 싶은 직업은 그리 많지 않더라는 친구의 말에 나 또한 전적으로 공감하며, 이 문제에 관해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술을 한도 이상으로 부으면 모두 흘러내려 빈 잔이 되고 만다는,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다. 고대 중국의 제환공(齊桓公)은 군주로서 올바른 몸가짐을 위해 이 잔을 늘 곁에 놓고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후기 우명옥이라는 도공이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면서 계영배를 만들었다. 이 잔은 거상 임상옥(林尙沃)에게 전해지는데, 그 또한 이 잔을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 7할만 채워야 할 것이 술뿐이겠는가? 자식에 대한 기대와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에 대한 욕심 또한 그렇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내 분신에 대한 기대와 욕심에 어찌 한도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회 지도층의 부정과 비리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잔인한 4월을 거치면서 계영배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겨봄 직하다. 이 모든 분란과 소동이 과욕에서 비롯된 것임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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