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중견 가수들의 화려한 귀환

입력 2015-04-24 05:00:00

돌아온 아저씨들, 봄 가요계 접수

봄기운이 완연한 4월 가요계에 중견 가수들의 기운 넘치는 행보가 이어져 눈길을 끈다. 이문세와 지누션에 이어 박진영까지 차례로 신곡을 발표한 후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음원 차트 1위 자리를 나눠 가졌다. 4월의 끝자락을 향해가는 현재까지 불혹의 중견 가수들이 차트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중.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 가요계에 중견 가수들의 정상 탈환이 릴레이로 펼쳐진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인기 돌풍에 이어 각각 팬들과의 '감성 직거래'를 위해 콘서트까지 준비 중이다. 여전히 건재한 '왕년의 인기가수'들은 동시대를 함께한 팬들에게 봄철 따뜻한 남서 계절풍의 느낌처럼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준다.

◆이문세, 13년 만에 정규앨범 발표

4월 중견 가수 열풍의 선두에는 이문세가 있다. 지난 7일 9곡이 수록된 정규 15집 '뉴 디렉션'을 발표하고, 타이틀 '봄바람'을 각 음원 사이트 차트 1위에 올려놨다. 음원 또는 미니앨범 형식이 아닌 정규앨범 발표는 무려 13년 만의 일. 각종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짊어지고 정규앨범을 내놓는 사례가 드문데다, '광화문 연가' '사랑이 지나가면' '옛사랑' 등 이문세와 함께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 고 이영훈의 부재 속에 제작된 음반이라 음악적 색깔의 변화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결과는 성공적. 일단, 이문세의 신보는 조용필의 19집 '헬로'처럼 과감한 실험이 엿보이거나 일부러 젊은 느낌을 자아내려 노력한 앨범이 아니다. 오히려 '정통 발라드'라는 이문세의 색깔을 그대로 살려내고 창법에 변화를 줘 완숙미를 강조했다. 여기에 나얼, 슈퍼주니어 규현 등 후배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해 자연스레 젊은 층을 흡수했다. 언제나 그렇듯 가사와 멜로디는 과거 지향적 복고 감성을 담고 있지만 잠재적인 새로운 팬층을 고려해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시도가 곁들여져 듣는 재미를 더한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갑상선암의 완전한 수술을 포기하고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만들어낸 앨범이란 사실까지 알려져 화제가 됐다.

◆지누션, 11년 만에 돌아온 힙합 오빠들

1990년대 인기 힙합듀오 지누션도 4월 중견 가수 열풍에 한몫했다. 지난 15일 11년 만에 싱글 '한번 더 말해줘'를 발표하고 정상에 올랐다. 올해 초 '무한도전-토토가'에서 왕년의 히트곡 '말해줘'를 부르며 다시 한 번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아예 신곡까지 내놓으며 '잘나가던 힙합 오빠'들의 귀환을 알렸다. 신곡 발표와 함께 내놓은 대표 이미지 속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소파에 기대앉은 거만한 포즈로 국내 힙합 1세대의 여유로움을 표현하고 건재함을 알렸다.

'한번 더 말해줘'라는 곡명에서 알 수 있듯 지누션의 신곡은 자신들의 최대 히트곡 '말해줘'의 연장선상에서 제작됐다. 얼핏 보면 '토토가'로 얻은 반짝 인기에 기댄 가벼운 이벤트성 음원이라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번 더 말해줘'는 '말해줘'가 가지고 있는 90년대 감성에 신식 사운드와 비트를 더해 만든 수작이다. 여기에 SBS TV 'K팝스타3'의 장한나가 피처링 주자로 참여해 젊은 팬층의 귀까지 만족시켰다.

무려 11년이란 긴 세월 동안 무대를 떠나있었던 불혹의 래퍼들이라 전반적인 스타일 자체는 '올드'하다. 하지만, 젊은 래퍼들의 신곡에 비해 한층 듣기 편한 라임과 리듬이 자꾸만 이 곡을 듣게 만든다. 어쨌든 '토토가'의 인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음원인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기획이고, 완성도 면에서도 크게 흠잡을 데가 없다.

◆박진영, 자사 후배 미쓰에이 제치고 1위 차지

박진영은 4월 후반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수다. 12일 공개된 신곡 '어머님이 누구니'로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넷째 주가 끝나가는데도 여전히 1·2위를 오르내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어머님이 누구니'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의 몸에 대한 찬양을 담아낸 중독성 있는 가사에 리듬감이 살아있는 곡. 박진영의 섹시한 매력과 보컬의 장점을 제대로 부각시켜 몰입도를 높인다. 뮤직비디오는 헬스장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한 박진영의 코믹한 표정 연기를 담았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는 가사와 한없이 망가지고 감탄하는 박진영의 연기가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높인다. 공개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무려 500만 뷰를 넘어서 화제가 됐다.

박진영의 신곡 발표에 JYP 자사 주력 그룹 미쓰에이의 '다른 남자 말고 너'의 순위가 하락해 '이거야말로 팀킬(team kill)이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JYP의 수장 박진영이 자신의 신곡을 밀기 위해 미쓰에이의 신곡 활동 시기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 이에 박진영은 "요즘 2주 이상 1위 자리를 지키는 곡이 없어 미쓰에이 역시 2주 정도만 시간을 주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행여 내 신곡이 미쓰에이를 이길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황이 어찌 됐건 새파란 후배들을 제치고 정상을 차지했다는 것, 거기다 JYP에서 내놓은 두 개의 신곡이 나란히 차트 정상권에 올랐다는 자체만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시대 흐름 적절히 반영, 개성 살리고 존재감 과시

'응답하라' 시리즈에 '토토가' 열풍, 그보다 앞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추억의 노래가 재조명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인기가수가 다시 무대에 올라 주목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빠르게 순위가 바뀌는 음원 차트에서 주 구매층인 젊은 층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인기 아이돌 가수들과 경쟁까지 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오랜 경력과 음악성만으로 승부를 걸기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8090세대에겐 익숙하겠지만, TV 활동이 뜸한 중견 가수들의 경우 젊은 층에겐 생소하게 느껴져 이미지 구축 작업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신곡 발표와 동시에 왕성한 프로모션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이문세와 지누션이 젊은 후배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건 탁월한 선택이다. 특히 이문세는 4번 트랙 '그녀가 온다'에서 슈퍼주니어 멤버 규현의 미성을 적절히 활용하며 그의 역량을 부각시켜 규현의 팬들까지 포용했다. 이 곡에서 들려주는 규현과 이문세의 화음은 단순히 세대를 아우른다는 의미 외에, 이 곡이 품고 있는 감성을 최대화시키기에 적합한 조합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내면서도 각자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프로듀싱으로 '윈윈 효과'를 누렸다. 타이틀곡 '봄바람'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실력파 보컬 나얼을 참여시켜 '기대했던 수준의 반응'을 끌어낸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예상치 못했던 조합이 가져온 '기대 이상의 효과'라 더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누션이 '한번 더 말해줘'에서 '엄정화의 대체재'로 신인 장한나를 활용한 것 역시 괜찮은 선택이다. '말해줘'를 부를 당시 주가를 높이고 있던 스타 엄정화만큼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아니지만 'K팝 스타'로 1020세대에 얼굴을 알린 장한나로 인해 지누션이 폭넓은 연령대를 공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과거 그들의 주 고객층이었던 3040세대가 힙합에서 멀어진 현실 속에서 현재의 수요층에 다가서기 위한 전략이다. 박진영 역시 '어머님이 누구니'에 Mnet '언프리티 랩스타'의 제시를 참여시켰다. 피처링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에도 출연시켜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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