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잠으로의 여행/캣 더프 지음/서자영 옮김/처음북스 펴냄
잠은 매우 비효율적인 활동이라는 편견(?)을 뿌리깊게 심어 놓은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벤저민 프랭클린과 에디슨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게으름뱅이가 자는 동안 땅을 갈아라, 그러면 팔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옥수수를 얻을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고, 에디슨은 "밤에 8시간에서 10시간씩 자는 사람은 완전히 잠을 잘 수도 완전히 잠에서 깰 수도 없다"면서 잠을 100% 채우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이런 잠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도 4시간 자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이나 평소 4시간만 잤다는 '나폴레옹 수면법', 15분 자고 4시간 일하는 '다빈치 수면법' 등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 어떤 전직 대통령은 재임 시절 '얼리버드!'를 외치며, 새벽에 일어나 설치는 바람에 그를 모시는 사람들 모두 '어리버리' 한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반대 이야기도 있다. 2008년 12월 CNN 앵커 안잘리 라오가 전임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과 인터뷰를 하던 중, 후임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클린턴의 말은 뜻밖이었다. "너무 열심히 노력하고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오랜 정치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한 대부분의 실수는 매우 피곤해 있을 때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너무 지쳐 있을 때에는 판단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조언했다. 피로를 푸는 데 잠보다 더 나은 게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새도 자고, 벌도 자고, 도롱뇽도 자고, 회충도 잠을 잔다. 기린은 서서 자고, 박쥐는 거꾸로 매달려서 잔다. 바다 수달은 빙글빙글 돌면서 자고, 돌고래는 한쪽 눈을 뜨고 잔다. 우리가 아는 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또는 편한 자세로 외부 세계에 대한 의식을 단절한 채 2분에서 20시간 사이의 특정한 수면패턴을 갖는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잠은 매우 위험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잠을 잘 때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잠을 버리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은 분명히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외부와 단절된 채, 깨어 있던 시간에 만나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내면의 세상과 만나게 되는 새로운 시작인 잠이 꽤 효율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깨어 있을 때 시간의 축을 따라가는 우리의 인식이 잠이 들면 감정의 축을 따라간다. 막 잠이 들면 예전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중첩되면서 새로운 퍼즐을 만들고 그것을 풀어나간다. 폴 매카트니의 경우 꿈에서 들었던 음률로 불멸의 명곡 '예스터데이'를 만들었다.
잠은 또 감성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동양에서는 아이를 즉시 안아줄 수 있는 공간에서 재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바로 달래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더 좋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한 결과 동양적 방식의 아이들이 독립심을 이유로 따로 재우는 서양 아이들보다 스트레스가 크게 낮았다. 꿈에서 특정 인물이 나에게 해를 끼쳤다면, 현실에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이렇듯 꿈에서의 감성과 깨어 있을 때의 감성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준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꿈에서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잠에 대해, 깨어 있음에 대해, 그리고 잠과 깨어 있음의 중간 지대에 대해 선명한 통찰을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우리는 꿈을 통해 객관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주관적인 경험을 하며 깨어 있는 삶에 대한 내성을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깨어 있는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잠자는 시간이다.
저자는 뇌신경학, 철학, 민속학, 사회학, 무속학, 문학, 심리학, 신학, 동물학, 신비주의, 민족학 등과 개인의 경험까지 얼버무려,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방식으로 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320쪽, 1만6천원.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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